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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경제전쟁 치를 '체력'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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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전쟁을 치를 모양이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안다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 전쟁이 발발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 경제전쟁의 최고 통수권자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임진왜란 당시 명랑해전에서 배 12척으로 일본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을 거론하며 결사항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배경이 어찌됐든 전쟁이 벌어지면 싸워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을 막는 것이다. 우리의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전쟁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대통령이 지금은 오히려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싸움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일본과의 경제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제 전쟁에서는 기업이 병사 역할을 한다. 지금 기업인들의 심정은 좋든 싫든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나가서 싸워야 하는 병사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정부는 최근 세제 지원 등 친기업 정책들을 갑자기 쏟아놓고 있다.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겠다는 것이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부품소재 장비 국산화를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고 금융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자신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감도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자신감만 갖고 명랑해전에서 배 12척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치밀한 준비와 전략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일본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준비가 돼있는가. 지금이라도 소재·부품분야 개발에 나서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과 치를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없다. 정부가 말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는 1~2년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일본이 지금처럼 소재·부품·장비의 강국으로 된 데에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근대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였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력을 급속히 키운 역사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일본은 1900년대 초반부터 기초과학에 적극 투자했고 1949년에 이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8년 기준 일본은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물리학상이 9명, 화학상이 7명이다.


반면 우리는 과학분야에서 아직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재·부품 국산화는 장기적인 준비가 될 수 있을 뿐 지금 당장 일본의 보복 조치에 맞설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일본이 예정대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경우 앞서 일본이 수출 통제에 나선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뿐 아니라 수백 개의 품목으로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


뒤늦게 산업화에 나선 한국은 소재부품을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이를 수입해 재가공하거나 조립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기술 격차는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소재를 국산화할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금의 반도체강국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것 또한 지나치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전쟁을 치를 기초 체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잠재경제성장률을 2.5~2.6%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부진 속에 정부의 재정 지출로 겨우 나라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기업과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몬다면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칠천량해전에서 있던 배 160척마저 잃어버린 원균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강희종 경제부장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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