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제사상 필수라는 사과, 1902년 들어온 외래과일
바나나, 파인애플 등 외래과일 올려도 무방...법칙없고 정성이 중요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최근 '바나나'나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이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자주 올라오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설 명절을 앞두고 실시한 '명절 농식품 구매행태' 조사에서 바나나의 구매 비중은 10.5%로 사과(19.8%), 배(17.5%)와 맞먹을 정도로 비중이 크게 늘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여전히 조상의 차례상과 제사상에 우리 전통 과일인 사과, 배 등을 주로 올려야한다는 주장도 강한 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통 과일로 알려진 사과의 경우, 조선시대 전통 차례상에는 아예 없었던 과일로 알려져있다. 사과는 구한말인 1902년, 미국인 선교사가 대구에 처음 들여와 심은 외래종으로 우리나라에는 현재 사과품종이 아니라 재래 자생종인 '능금'이 있었을 뿐이다. 사과가 본격적으로 한반도 전역에 재배돼 우리네 식탁에서 전통 과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로 알려져있다.
실제 사과가 외래과일이란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기르며, 현재 사과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품종인 '부사(富士)' 종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사는 일본 후지산을 우리 한자발음대로 읽은 것으로, 1930년대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개발된 후 한국과 중국으로 유입된 사과 품종이다. 현재 중국에서도 전체 사과 생산량의 80%가 이 부사 품종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품종으로 알려진 '홍로', '아리수' 등 일부 품종을 제외하면 보통 '아오리사과'라 불리는 '쓰가루', 부사의 돌연변이 품종인 '히로사키 후지', 당도가 높은 품종으로 알려진 '시나노 스위트' 등 대부분이 일본에서 온 품종이다.

한국에 자생하던 '능금'은 산도가 매우 높고 알이 작은 소형종으로 식용으로 많이 쓰지 않았던데다 현재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조선시대 차례상과 제사상에는 현재와 같은 사과란 과일이 아예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식용과일의 경우, 생산량이 매우 적었던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비쌌으며 평민들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일본의 에도시대의 경우엔 평민들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의 품종이 아예 제한되기도 했다. 결국 차례상에 올라가는 사과는 현대에 들어와 생겨난, '만들어진 전통'인 셈이다.
지금 뜨는 뉴스
더구나 차례상이나 제사상이나 원래 지정과일이 따로 있거나 상을 차리는 원칙이 정해져있지 않다. 일반적인 차례상 규칙이라 알려진 어동육서(魚東肉西ㆍ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ㆍ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좌포우혜 (左脯右醯ㆍ육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조율이시(棗栗梨枾ㆍ왼쪽부터 대추ㆍ밤ㆍ배ㆍ감), 홍동백서(紅東白西ㆍ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 등은 모두 1960년대 정부에서 만든 '가정의례준칙'에 등장한 내용에 불과하다. 차례는 원래 차와 다과를 간단히 올리고 마는 절기 제사로 신라시대 불교 영향 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교에서 중시여긴 기제사와는 별도로 매우 간소하게 차렸다고 알려져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