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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수'와 '우울'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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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수'와 '우울'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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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의 얼굴은 아무래도 낙엽이다. 마른 대지 위로 무심히 떨어지는 낙엽! 바람 부는 저잣거리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 이 계절엔 구르몽(R Gourmont)의 '낙엽'이 압권이다.


"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이제 낙엽은 시나브로 애상과 우수(憂愁)를 온몸으로 전하며 낙하한다. 이 조락(凋落)의 계절에 감수성이 살아 있는 자라면 누구나 낙엽이 전하는 우수로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ㆍ로마에서 의학용어로 사용된 '검은 담즙'이라는 멜랑콜리(melancholy)는 우수와 우울로 번역된다. 그것은 '무거운 심정' 또는 '어둡고 우울한 기분'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서도, 정치에서도, 또한 시나 예술에서도 참으로 걸출한 인물은 모두 멜랑콜리커"라고 했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불화 관계로 인한 불편하고 '무거운 심정(우울)'은 오히려 예술, 문학, 철학의 모태와 산실이 되기도 한다. 멜랑콜리는 서양 문화의 숨겨진 기원이다. 서양 문화에서 그것은 이성의 그림자, 즉 어두운 낯선 힘과 고통과 광기에 속한다. 그래서 멜랑콜리는 문화 창조의 비범한 천재를 만드는 필요조건인 셈이다.

오늘날 우울증은 '멜랑콜리에서 매력을 뺀 것'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현대인의 우울은 '디프레션(depression)'으로서 '우선, 대개' 정신장애나 질병으로 치부돼 치료 대상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상업화된 의료적 패러다임의 산물로서 '만들어진 우울증'도 존재한다. 인위적으로 '질병 만들기'와 내담자의 '환자 만들기'는 의료 권력과 의료 자본의 산물이기도 하다. 날로 증대되는 현대인의 우울이 결코 자본주의적 의료 산업을 증진하는 치료 대상으로 남용돼서는 안 된다. 특히 우수와 함수 관계에 있는 우울은 정녕코 질병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60만명을 넘어서고 계속 증가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우울증을 의료적인 약물치료와 정신의학과 심리치료만으로 접근 가능하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치료의 진정한 목적은 그 질병을 유발한 고통의 원인과 문제를 환자가 스스로 알아차리고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울증은 많은 경우 개인의 고착화된 신념 및 사고방식의 변화를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울증 치료에 대한 다변적인 접근 방식과 그 개념에 관한 깊이 있는 다양한 담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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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우울과 연관된 우수라는 근본기분은 인간 존재의 조건이자 특권이다. 그것은 삶의 무상성 그리고 인생 전체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의 고통과 생존의 무게가 버거워 우울감에 젖어들 때에도, 그 심정을 질병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 정작 우울할 수 있기에 사람인 것이다. 삶의 이유와 지반이 보이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우수! 그로 인한 우울은 역설적으로 삶을 창조적으로 빚어갈 수 있는 자유의 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 여기, 애상과 우수를 불러오는 낙엽이 내리는 도시의 황량한 거리에서 느끼는 우수와 우울! 그것은 사람의 특권이자 자신의 존재 증명인 셈이다.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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