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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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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그림=아시아경제 오성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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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해방촌의 시작은 '한신옹기'부터입니다. 미군부대 담벼락을 옹기로 쌓아올린 길을 따라 오르막을 타면 해방촌의 속살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진=김현민 기자]


해방 후 월남한 실향민 미군 보급품 상자 뜯어 움막 짓고 거주
남산 뒷편 오르막길 숨겨진 빈민촌…경리단길 뜨면서 유명세
독특한 카페·책방·맛집, 임대료 급등에 젠트리피케이션 역풍도
마을 초입 '한신옹기'-미군기지-낡은 군인 아파트, 서울의 속살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서울 반포대교를 건너 광화문 쪽으로 가다보면 남산 3호터널 직전에 경리단길과 해방촌(解放村)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회전해서 해방촌으로 접어들면 미군 부대 담벼락을 가득 채운 옹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이지요. 지난해 서울시가 '미래문화유산'으로 선정한 '한신옹기'는 이제 해방촌의 상징이 됐습니다. 촘촘하게 쌓여 있는 높다란 옹기벽을 거쳐 가파른 오르막을 타고 남산을 향해 오르면 해방촌 5거리를 지납니다. 낡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신흥시장 골목과 해방교회를 지나 내리막을 타면 용산이든, 광화문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열린 동네입니다.


해방촌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남산(南山)을 알아야 합니다. 서울 한 가운데 있는 남산은 해발 262m의 작은 산이지만 조선시대 경복궁에서 바라보는 앞산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서울의 중심인 남산의 기를 누르기 위해 무지 애를 썼습니다. 현재 남산도서관 근처에 조선신궁을, 숭의여대 자리에 경성신사를 세우기도 했지요.

[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해방촌을 소개하는 안내판. 김현민 기자 kimhyun81@



◆ 해방 후 주택난에 실향민 움막짓고 집단거주 = 1945년 8·15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이런 치욕적 건축물들을 없애고 남산에 국회의사당을 세우려다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남산은 일반인에게는 금지로 인식돼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남산의 서쪽인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입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곳입니다. 해방 후 미군정청이 그 지역을 접수했는데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자 북쪽에서 내려온 월남 실향민들이 이곳의 빈 건물인 일본군 육군관사를 차지하고 살게 됩니다.


해방 이후 서울의 주택난은 심각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살다 남기고 간 주택은 권력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나 북한을 떠나온 실향민들은 정착할 곳이 없었기에 이런 대형 빈 건물은 좋은 안식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청은 이들을 강제 퇴거시킵니다. 이 곳 외 갈 곳이 없던 이들은 관사 위쪽의 사격장에 미군 보급품 상자를 뜯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해방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지요.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난 온 사람들도 함께 정착하면서 제법 큰 동네를 형성하게 됩니다.

[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1960년대 해방촌의 모습. 뒷편 고지대에 해방예배당(해방교회)가 보인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해방촌의 초창기 구성민들은 주로 평북 선천 주민들이었습니다. 북한의 토지개혁에 반발해 남쪽으로 피난을 온 선천 주민들은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함께 모여 살 곳을 찾다 선택한 곳이 이곳입니다. 일본의 군사기지가 비어있고, 당시 거주민이 거의 없었던 비탈진 남산자락은 불법 점유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겠지요. 특히 남대문 시장과 서울역이 가깝고, 미군부대 옆이어서 일거리나 먹거리가 나오기 쉬운, 경제활동을 하기에도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 소설 '오발탄'의 배경된 가난한 달동네 = 이런 사연들은 1959년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에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오발탄>은 한국전쟁 이후의 암담한 현실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계리사(計理士) 사무실 서기로 일하면서 양심적이고 성실한 주인공 송철호는 돌아갈 수 없는 북쪽 고향(평북 선천)을 그리워하다 미쳐버린 어머니와 자포자기한 채 맘대로 사는 남동생, 양공주가 된 여동생, 병든 아내, 고무신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함께 해방촌에 살고 있습니다.


남동생이 강도죄로 체포되고,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아내마저 병원에서 숨지자 철호는 무너집니다. 스스로를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한탄하면서. 故유현목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칭송받지만 5·16 군사정변 후 사회를 지나치게 비하했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지요.

[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신흥시장 골목의 주택들. 불과 10여 년전에는 이주노동자들이 10만원 짜리 월세도 쉽게 구해 살았습니다. [사진=김현민 기자]



소설과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당시 해방촌은 가난한 달동네였습니다. 남산 뒤편에 감춰진 빈민촌이었지요. 지금도 서울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몇 안되는 지역 중 한 곳입니다. 오르막이 심한 고지대여서 유동인구도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길건너 경리단길이 알려지면서부터 숨겨졌던 해방촌의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비교적 저렴한 월세 때문에 길건너 경리단길 대신 이곳에 정착한 미군 군속들과 더 저렴한 월세를 원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탓에 그들의 취향에 맞는 몇몇 카페와 식당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시세에 민감한 부동산업자들은 경리단길의 건물을 사려던 연예인들에게 해방촌의 건물들을 소개합니다. 연예인들이 하나둘 발붙이자 대중매체가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맛집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해방촌은 북적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북적거림은 반가운 소식만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습 = 그 전부터 꿈틀대던 짒갑과 땅값이 2015년 서울시가 해방촌을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하자 부동산 가격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해방촌 신흥시장 근처에서 월세 10만원으로 살던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야 했지요. 십수년 간 이곳에서 카페나 식당을 운영해왔던 사람들은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낡은 군인아파트가 마음이 아픕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과 그 가족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사는 곳은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호화롭지는 않아도 아늑한 안식처는 돼야 하지요. 3동 짜리 아파트인데... 새로 지을 예산이 부족한가 봅니다. [사진=김현민 기자]



해방촌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집값도, 임대료도 많이 올랐다. 임대료는 3~4배 정도 올랐다고 보면 된다. 임대료 100만원 넘는 가게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200만원 넘는 가게가 많다"면서 "신흥시장 주변의 허름한 주택은 찾는 사람도 없지만 소개도 잘 안한다"고 말했습니다. 해방촌도 세입자와 임차인 생활 터전에서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역풍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곳과는 다른 세계인 듯 언덕 아래 미군기지는 차분해 보입니다. 기지를 차지하고 있는 중후한 모습의 다양한 건물들이 눈에 띕니다. 저 건물들은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옮겨가면 철거됩니다. 해방촌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무너지지 못해 버티고 선듯한 3동짜리 군인아파트가 못내 서글픕니다.


튼튼해 보여도 철거 돼야할 기지내 건물들과 곧 무너질지언정 군인과 그 가족의 안식처인 만큼 버텨내야 하는 낡고 낡은 아파트. 우리 군인과 그 가족들의 자존심이 세워질 수 있도록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은 어려울까요. 멀쩡한 건물은 허물고, 낡은 군인아파트는 외면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군과 미군의 현실을 대변하는 현장이 해방촌 꼭대기에도 있습니다.

[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해방촌 곳곳을 누비다보면 예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웨터를 만드는 아저씨의 손길이 신중합니다. [사진=김현민 기자]



◆ 낡은 군인아파트와 이창동 감독의 선택 = 해방촌은 매력적인 동네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임대료가 올랐지만 밝고 독특한 분위기로 눈길을 끄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장과 연예인이 운영하는 책방도 있습니다. 군인들의 속옷을 제조해 군에 납품하던 공장의 모습도 일부 남아 예전의 생활상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한국의 골목길]소설 '오발탄' 가난한 달동네, 영화 '버닝' 위안의 장소로 [그래픽=이기재 기자]

해방촌은 카페와 식당으로만 알려진 곳이 아닙니다. 해방촌의 속살은 깊이 들여다 봐야 보입니다. 해방촌 꼭대기에 위치한 해방교회를 기점으로 남쪽은 이태원과 미군기지, 서쪽은 남산도서관과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후암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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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은 올해 개봉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 등장했던 여주인공 해미의 공간이 있는 곳입니다. 아프리카로 떠난 뒤 남겨진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주인공 종수가 가끔 들러 쉬다가는 안식처이자 처연한 현실의 공간이기도 하지요. 이창동 감독이 해방촌과 붙은 후암동을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시킨 것은 왜 일까요.


강남의 부유한 교회에 다니면서 놀고먹는(?) 벤의 생활과 대비되는 곳이 이곳입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던 해방 이후 실향민들의 현실이 지금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가운데서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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