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림이법' 시행 이후 통학차량 교통사고 건수 오히려 증가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잠든 아이 의무 확인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 제도 시행
'폭염 속 어린이 방치' 통학버스 사고 차량.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황효원 기자]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에 사는 최모(5)군은 약 8시간 동안 버스에 홀로 남겨졌다. 해당 차량에 탑승한 버스 기사와 인솔교사 모두 버스 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그날 광주의 낮 최고기온은 35도를 넘어섰고 시동이 꺼진 채 밀폐된 버스 내부는 60도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염 속에 방치된 최군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의식불명 상태다.
'찜통 통학버스' 사고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비슷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린이 통학버스 뿐만 아니라 자가용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군산에서는 4세 여아가 문이 잠겨진 유치원 통학 차 안에서 2시간 가까이 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무도 이 아이가 방치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길을 지나던 시민이 차 안에서 울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발견해 유치원에 연락해 구조됐다.
어린이 통학차량의 안전의무 강화를 골자로 개정돼 2015년 1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세림이법' 이후에도 현장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2013년 청주에서 통학차량에 치여 숨진 김세림(당시 3세)양의 사고를 계기로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다니는 유치원,어린이집, 학원, 체육시설 등 어린이 통학차량(9인승 이상 버스·승합차)은 어린이용 안전띠와 안전 발판을 설치하는 등 규정에 맞게 차량을 구조 변경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또 운전자 외에 성인 동승자가 탑승해 어린이 승·하차 시 안전을 확인하고 안전띠 착용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세림이법 시행 이후 발생한 통학차량 교통사고는 2014년 31건에서 2016년 51건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법은 강화됐지만 실제 현장에선 이 같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어린이 안전사고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는 '안전불감증'이 도사리고 있는 반면 선진국은 우리와 다르다. 지난해 10월 미국령 괌에서 부부가 아이들을 차량에 방치 후 쇼핑을 하다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체포된 뒤 벌금형에 처해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간 경미한 처벌이 내려졌던 우리와 달리 미국은 어린 아이를 보호자 없이 차량에 두기만 해도 범죄로 간주한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20여개 주가 차량 내 방치 처벌 규정을 갖추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법은 6세 미만 아이를 12세 이상 보호자 없이 15분 이상 방치하면 경미 범죄로 간주돼 벌금형에 처한다. 사안이 심각하면 중범죄로 분류될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여름 어린이를 차량 안에 방치한 채로 자리를 비워 아이들이 숨지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20년간 차량 내 방치 문제로 500여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가 설치된 버스.사진=school bus fleet 캡처
이에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른바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 제도를 도입했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점검하라는 조항으로 어린이 통학차량의 가장 끝쪽에 버튼을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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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는 반드시 시동 끄기 전, 차문 닫기 전에 체크 버튼을 누르고 내려야 한다. 하차 시 버튼을 누르지 않고 시동을 끄면 비상 경고음이 울린다. 결국 운전자는 시동 끄기 전 가장 끝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해 끝까지 눈으로 남아있는 아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법상 아동의 차량 내 방치에 대한 처벌 및 신고 규정이 미비한 실정이다. 아동 보호 의식 수준이 높은 미국과 달리 우리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인 '과실'로 보고 가벼운 처벌을 내릴 뿐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운전자 및 동승자가 차량에서 벗어날 때 미취학 아동을 차량에 방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황효원 기자 woni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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