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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그리스인 조르바'는 왜 국가를 '엉터리 수작'이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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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그리스인 조르바'는 왜 국가를 '엉터리 수작'이라고 했을까? (사진=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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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 조르바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인'이란 이미지로 재해석되고 있다. 대형서점에서 5060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1위 작품으로 선정된 이유도 조르바가 건네는 자유와 해방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란 평이 줄을 잇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 정신적 여유를 새롭게 찾기 위해 찾는 책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실제 이 작품에 깔려있는 배경인 '발칸전쟁'이란 참혹한 역사를 마주하면, 이 책이 결코 진정한 자유를 찾는 노년의 괴짜 사기꾼이 벌이는 시트콤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르바부터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수많은 외세에 둘러싸여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100년 넘는 기간동안 전쟁의 상흔 속에 살아갔던 그리스 사람들을 상징한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그리스인 조르바'는 왜 국가를 '엉터리 수작'이라고 했을까? 1913년 2차 발칸전쟁 이후 상황을 보여주는 지도. 당시 그리스는 옛 그리스 왕국의 옛땅을 모두 회복해야한다는 대그리스주의 열풍에 따라 호전적인 여론이 강했다.(지도=위키피디아)



근대 그리스는 유럽에서도 역사가 참으로 복잡한 지역이었다.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터키에 의해 멸망한 후 500년 가까이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829년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발칸의 정치지형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서부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동부의 러시아제국은 터키의 발칸 영향력을 약화시키기위해 배후에서 수많은 그리스인 독립조직들을 후원하고 부추겼다. 영국과 프랑스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함대를 끌고 와 발칸 분쟁에 개입했다.


조르바가 '부불리나'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오르탕스 부인은 1866년부터 30여년간 이어졌던 '크레타 봉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897년 그리스 정부는 과거 그리스 영토에서 모든 터키군을 몰아내야한다는, 이른바 '대(大)그리스주의'에 휩싸인 대중들의 압력에 따라 오스만 터키군과 전쟁을 벌였지만 참패했다. 하지만 곧바로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열강이 개입해 크레타는 자치국 형태로 그리스의 보호국이 된다. 젊은시절 이 4개 열강의 제독들을 사로잡았다는 그녀의 회상 속에는 크레타섬이 겪었던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그리스인 조르바'는 왜 국가를 '엉터리 수작'이라고 했을까? 1차대전 당시 그리스 베니젤로스 총리가 전선시찰을 나온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발칸전쟁에 휘말려 그리스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일어난 비적떼에 가담해 전투를 치렀던 조르바는 조국이란 개념을 몹시 경멸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19세기 이후 근대 그리스와 발칸반도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끝없는 전쟁의 역사였다. 1829년 독립 이후부터 그리스의 국내외 상황은 매우 불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각지에서 일어난 분쟁,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등 주변 열강의 개입, 영국 등 열강에 진 채무로 1893년 이후 파산한 재정상황 등이 그리스를 더욱 포화 속으로 밀어넣었다.


100년 넘게 전쟁과 내전이 거듭되면서, 전쟁의 당위성마저 점점 사라졌다. 단순히 오스만 터키와의 성전을 주장하던 민족주의 색채가 짙었던 전쟁은 점차 왕정주의자, 민주주의자,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이데올로기가 다른 파벌간의 전쟁으로 비화됐다. 소설 속 조르바가 조국이란 개념을 경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그리스인 조르바'는 왜 국가를 '엉터리 수작'이라고 했을까? 1912년 당시 발칸전쟁 상황을 풍자한 삽화(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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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12년과 1913년 벌어진 1차, 2차 발칸전쟁은 이어 이듬해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의 범위는 더욱 확대됐고, 러시아혁명의 물결 속에 카프카스 지방에 살던 15만명의 그리스인들이 인종청소를 당하는 등 난세의 연속이었다. 소설의 실제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인 그리스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스(Giorgis Zorbas)는 훗날 그리스 정부의 공공복지부 장관이 된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함께 카프카스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인들을 송환시키기 위한 계획에 뛰어들기도 한다.


결국 조르바가 외쳤던 자유는 그리스의 고토를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 사람들,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죽어나간 소위 지식인들과 열강에 의해 계속해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희생되는 죄없는 아이들과 여인들이 넘쳐나는, 생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외친 자유였던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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