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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경기 필 지휘하는 얍 판 즈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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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경기 필 지휘하는 얍 판 즈베던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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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단이 중량급 지휘자를 객원으로 초빙할 땐, 개인의 지명도나 음반·영상물의 성과, 강점을 지닌 레퍼토리나 최근 연주 경향을 고려해 무대를 맡긴다. 일본이나 중국을 들린 김에 한국도 거쳐 가라는 요구와 문의가 국내 악단과 유럽 매니지먼트의 실제 거래에 오가곤 한다.


이달 22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24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정기 연주회를 갖는 경기 필하모닉은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지명자 얍 판 즈베던(Jaap van Zweden)을 초청한다. 판 즈베던은 이달 9일부터 18일까지 뉴욕 필과 동북아 투어를 마치고 경기 필 공연으로 한국을 찾는다.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준비됐고, 22일 협연자는 최예은, 24일엔 김봄소리다.

2017년 말 성시연 전 예술단장이 물러난 이후 경기 필의 2018 시즌은 해외 지휘자가 담당한다. 올 초 경기도문화의전당 정재훈 사장이 밝힌 대로 2016·17년 리카르도 무티 프로젝트의 탄력에 힘입어, 경기 필은 다니엘레 가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 음악감독의 객원 섭외도 성공했다. 일련의 객원 시리즈는 향후 예술단장직을 염두에 둔 오디션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대외에 알리는 데 유명 음악가가 충원되는 양상을 보인다.


올 가을 뉴욕 필 음악감독에 취임하지만 판 즈베던의 한국내 인지도는 낮다. 홍콩 필 감독으로 낙소스에서 출반한 바그너 앨범들이 호평 받지만 마이너 레이블의 제약도 존재하다. 뉴욕 필 전임 감독 앨런 길버트가 수차례 악단과 서울에 왔지만 번번이 아쉬움을 남겼듯, 판 즈베던은 내한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차이콥스키 관현악에서 뭔가를 보여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판 즈베던은 경기 필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15일 현재, 자신 홈페이지 스케줄에 경기 필 공연을 제외한 점도 비슷한 연유로 보인다. 지휘자 입장에선 한국 관객도 아직 경기 필의 개성이 어떻다는 점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선용할 법하다. 처음 만나는 리허설부터 악보를 만국 공통어 삼아 악단과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편견 없이 마주한다면, 단순한 화학 결합 이상의 만남이 기대된다.


판 즈베던의 객원 능력을 기대하는 근거는 우선 그가 훌륭한 악장 출신인 점에서다. 1960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줄리어드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취업한 직장이 RCO였다. 열 아홉에 최연소 악장이 되면서 감독으로 보좌한 지휘자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리카르도 샤이였다. 교육 기관에서 별도로 수업을 받지 않았지만 1995년 지휘자로 전향하면서, 과거 두 거장의 스타일을 섭렵한 자산을 20년 넘게 그가 거친 음악 조직에 조금씩 나눠줬다.


[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경기 필 지휘하는 얍 판 즈베던 판 즈베던 (C) Chris Lee

판 즈베던이 중견으로 성장하기까지, 가능성을 보고 미래에 투자한 베네룩스 악단의 심미안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네덜란드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를 시작으로 헤이그의 레지던트 오케스트라(2000-05), 앤트워프의 플랑드르 로열 필하모닉(2008-13) 감독을 역임하면서, 판 즈베던은 지휘자가 음악감독이 됐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금전으로 살 수 없는 교훈을 체득했다. 음악적으로는 조화였고, 관리 면에선 인화였다. 감독을 마치고 물러난 악단에서 다시 객원 요청을 받는 건 그동안 쌓은 신뢰 덕분이다.


음악계가 지적하는 판 즈베던의 장점은 적응력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가 한국 축구대표팀을 조련하듯, 세계 어디에 가도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지에 녹아드는 데 있어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들은 빼어난 역량을 보였다. 과거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시절의 한스 퐁크를 시작으로, 도쿄 심포니 위베르 수당, 말레이시아 필하모닉 키스 베이클스, 요즘에는 뉴질랜드 심포니의 에도 데 바르트가 그 예다. 판 즈베던과 홍콩 필도 마찬가지다. 2012년 홍콩 필을 맡은 후, 악단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지난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 참가해서 기백 넘치는 사운드와 중화 악단의 선입견을 깨는 세련된 소리를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서 판 즈베던이 경기 필 단원들에게 요구하리라 예상되는 역량은 공연장 어쿠스틱에 빠르게 적응하는 순발력이다. 홀에서 오케스트라 소리가 잘 안 들리면 관객들은 공간 탓을 쉽게 하는데, 판 즈베던은 지휘자와 악단 문제로 지적했다. 관객에 잘 들리도록 해결안을 찾으면서, 노하우를 쌓으니 악단이 한 단계 올라서는 건 시간 문제였다.


판 즈베던이 2008년 댈러스 심포니에 부임해 베토벤·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서 이룬 압축 성장에서 뉴욕 필은 희망을 봤다.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가 서열이 낮은 악단의 급을 올리는 데 힘쓴 무명의 능력에 주목한 것이다. 뉴욕 필 감독을 깜짝 발탁한 속내엔, 멀게는 1969년 번스타인 퇴임부터 꾸준히 하락한 악단의 연주력에 대한 솔직한 자가 진단과 새출발의 의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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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방식으로 악단을 조련하는 게 지휘의 정도로 여기던 시절이다. 21세기 들어 주장을 펴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수많은 객원 지휘자를 보면서, 오케스트라로 맺어진 관계는 결국 정치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미디어는 누가 악단의 감독이 됐는지에 관심을 갖지만 단원은 오늘의 지휘자가 잘하는 장르는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결국 뉴욕 필 음악감독의 프레임에서 벗어날수록 지휘자 판 즈베던의 진면목이 두드러질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다음의 질문이 주어지고 대답도 이어질 듯 하다. 판 즈베던은 마에스트로인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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