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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피카소의 '웅크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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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피카소의 '웅크린 거지' 웅크린 거지(파블로 피카소/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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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미술관장이었던 마리 로르 베르나다크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청색 시기(Blue Period/1901∼1904)'를 '피카소가 모든 것을 청색으로 본 시기'라고 정의했다.(피카소, 성스러운 어릿광대) 피카소는 가난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 시기 '자화상(1901)', '삶(1903)', '맹인의 식사(1903)' 등에 등장하는 '푸른' 주인공을 이용해 인간의 고독과 고뇌를 웅변하고 예술은 곧 삶이라고 외쳤다.

베르다나크는 청색이 밤의 색, 바다의 색이며 허무주의와 절망에 적합한 색이라고 했다. 피카소의 친구이자 비서였던 하이메 사바르테스에 따르면 피카소는 예술이 슬픔과 고통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삶의 토대는 고통이라고 믿었다. 피카소는 말한다. "어떻게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에 무관심할 수 있는가.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프랑스 서신/시몬 테리) 이런 피카소가 거리에 웅크리고 앉은 여인을 그냥 지나쳤을리는 없다. 그는 '청색 시기'의 복판인 1902년 '웅크린 거지(La Mis´ereuse accroupie)'를 내놓았다.


노스웨스턴대-시카고예술연구소 과학적예술연구센터(NU-ACCESS) 연구진이 '웅크린 거지'를 분석해 지난달 17일 '2018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총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연구진은 '초분광 적외선 반사복사법'으로 '웅크린 거지'의 밑바닥 그림을 들여다본 결과 여인이 원래 오른 손에 빵을 들고 있었다고 밝혔다. 빵을 든 모습은 천주교나 기독교의 성찬식을 연상시키는데, 피카소가 그림으로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걸 피하려 마지막에 옷으로 오른손과 오른팔을 가렸을 것이란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야기의 이야기'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대단하지만 피카소의 정치적 고려를 추측한 데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피카소는 이런 말도 했다. "(회화는) 적과 싸우며 공격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무기이다." 2차대전 중 나치 장교가 '게르니카(1937)'의 사진을 가리키며 "당신이 그렸느냐"고 물어볼 때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그렸다!"고 쏴붙였다. 혁명가를 자임했던 그는 1944년 공산당에 가입했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산당을 찾았다…예술가는 하나의 정치적 인물"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그가 종교를 고려해서 손ㆍ팔을 가렸다는 건 어쩐지 어색하다. 물론 이것도 추측일 뿐. 예술가는 자기의 자취로 후세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과학이 찾은 건 대답의 작은 단초가 아닐까.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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