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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6]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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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6]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장석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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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이 거대한 성벽을 나의 비루한 언어로 옮길 수 있을까. 언어에게 미안하지만, 언어를 결코 낮춰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시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핑크 플로이드 앞에서 형용사 ‘비루하다’를 쓰고 말았다. 사용하면 할수록 의미와 가치가 타락하는 다른 형용사 ‘아름답다’를 입 밖에 꺼낸다. 핑크 플로이드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음악을 자주 듣지 않았다. 어떤 음악은 남겨둬야 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 가둬놓았지만, 아무리 숨겨두려 해도, 그 음악은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는다. 흑체복사(黑體輻射)가 이루어진다. 핑크 플로이드, 그 항성을 바라본다.


앨범 <<간섭(Meddle)>>을 꺼낸다. 엘피 자켓을 연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 앨범을 개봉하는 건 종교적 경험이었고, 바늘이 엘피(LP)의 소리골에 내려앉으려던 순간, 막 들어가려던 마법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서 앨범 커버는 반드시 필요했다.”(오브리 파월,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Vinyl. Album. Cover. Art)>>의 서문 중에서, 이 서문은 피터 가브리엘이 썼다.) 겉장에 문자가 없다.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 알 수가 없다. 양면으로 펼치자 안쪽에 핑크 플로이드 멤버 넷의 상반신 사진. 젊다. 왼쪽부터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닉 메이슨(Nick Mason),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 리처드 라이트(Richard Wright). 레코드 속에는 여섯 곡이 실려 있다. 맨 끝에 <반향(Echoes)>이 보인다.

2002년이었다. 핑크 플로이드 공연을 보기 위해 88올림픽 주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그때 동행했던 사람들. 남자 셋, 여자 둘. 그 중 넷은 캠퍼스 커플에서 부부로 변신했고, 넷은 시인이 되었다. 잔디밭 관중석을 에워싼 스피커들, 찬란했던 조명 그리고 그날 밤 ‘축배’에서 마셨던 술. 끝나고 알았다. 그 공연은 핑크 플로이드가 아니라 로저 워터스의 공연이었다. 그 기타는 내가 라이브로 듣고 싶었던 그 기타가 아니었다. 데이빗 길모어의 기타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실망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본다. 그 공연이라도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곳에서 그때, 소리가 살아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관중석을 에워싼 스피커가 뿜어내는 음악은 솜털 하나하나를 자극했다. ‘전율’이라는 명사의 실재. 동사 ‘아로새기다’의 실현.


유튜브를 연다. 내가 선택한 것은 재작년에 열린 폼페이(Pompeii) 라이브. 45년만에 데이빗 길모어가 폼페이에 돌아왔다는 슬로건. 일흔이 된 그가 기타를 연주한다. 조명 속에 실루엣으로 서 있다. 닉 메이슨도, 리차드 라이트도 없다. 혼자서 핑크 플로이드가 되어 노래한다. 환희와 탄식이 섞인다. <인생으로 돌아와(Coming Back To Life)>서, 음악으로 귀환해서, 그가 우리 앞에 있다. 기타가 빛을 내뿜는다. 고유명사 핑크 플로이드 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진 바지에 면 티셔츠를 입고 공연하는 저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장엄한 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가사에서, 공연장의 어둠을 쪼개고 있는 초록 레이저에서 나는 시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일제히 점등되었다가 꺼지는 조명. 어둠과 빛의 화음을 주관하는 키보드 선율의 습윤한 질감, 조금씩 음의 끝이 갈라지는 가수의 음성 그리고 내가 기다리던 기타의 등장. 부사 ‘가장’을 쓸 때이다. 가장 황홀한 기타 연주가 내 심장 안으로 들어온다. 피가 뜨거워진다. 기타가 눈물로 바뀐다. 피부를 뚫고 나오는 얼음송곳을,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바람의 찬 손길을 느낀다. 이 기타는 몸을 찢어내려고 한다. 끝도 없이 나를 젖게 한다. 백색 조명 속에서 <편안한 무감각(Comfortably Numb)>이 잔향(殘響)을 남긴 채 지워지고 있다.

고통은 없다
당신은 서서히 멀어진다
먼 수평선에는 연기 솟는 배
물결처럼 나타나는 당신
입술은 움직이고 있지만
나는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내가 얼핏 보게 된 것
곁눈질로 슬쩍 보았던 것
제대로 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사라진 것
지금도 정확히 무엇인지 지적할 수가 없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아이는 자라고
꿈은 사라지고
그리고 나는
편안한 무감각에 빠져 있다
―<편안한 무감각> 부분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6]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어른이 된 내가 과거의 나를 쳐다본다. 옛날의 나, 너는 거기에 있었는데, 지금의 내 안에는 없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그날의 순수한 나는 사라지고,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를 상실한 채,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그것은 무감각, 마비된 삶에 불과하다. 나는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그날의 내가 될 수 없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가사는 분명 시이고, 문장을 노래로 부르는 목소리도 시이다. 언어의 내용과 상관없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덮어버리는 저 웅혼한 기타의 빛도 시이다. 음악과 시가 분리되지 않는 이 순간이 시이다. 강렬한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단어는 ‘아름답다’뿐이다.


차라리 절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음악 앞에서 문학이 부서져 내린다. 음악을 이길 수 없는 시의 열패감이라니…… 그러나 슬프지 않다. 음악과 시는 적이 아니다. 음악과 시는 하나였다는, 바보 같은, 메아리 없는 말은 발화하지 않겠다. 시와 음악은 다르다. 서로 흠모할 뿐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시는 음악으로, 음악은 시로 번역해야 한다. 절대로 같을 수 없지만, 동시에, 절대로 다를 수 없는 존재들. 한 몸 위의 두 머리.


조금 더 감정을 증폭한다. 데이빗 길모어의 기타는 위대하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언어는 길을 잃는다. 나는 <<달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높은 희망(High Hopes)>을 지난다. <미친 다이아몬드 당신이여 빛나라(Shine On You Crazy Diamond)>에 도달한다. 우리는 언제 다이아몬드였던가. 언제 찬란하게 빛났던가. 우리가 청춘이었을 때, 우리는 아름다웠던가. “어서 오라 그대, 자유로운 자여, 미래를 보는 자여, 화가여, 피리 연주자여, 죄수여. 와서 빛나라, 미친 다이아몬드처럼.” 다시 불꽃이 될 수 있을까. 기타가 어둠을 가른다. 내 마음을 할복한다. 기타 불꽃이 타오른다. 나를 소신(燒身)시키려고 한다. “당신이 젊었을 때를 기억해봐요, 당신은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그날, 당신은 미친 다이아몬드……” 오늘, 나는 다른 시 <에코우즈>를 읽는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삶의 ‘메아리(Echoes)’가 돌아오고 있다. 나는 날개를 펼칠 것이다. 어느 날…… 마침내……


저 너머 알바트로스
공중에서 정지비행하네
물결치는 파도 아래
산호 동굴의 미로 속에 웅크렸던
먼 시간의 메아리
모래톱을 가로질러 버들피리처럼 퍼져오네
여기 모든 것은 초록과 잠수함


아무도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지 않고
아무도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네 무엇인가
휘몰아치고 무엇인가
시도되는데
빛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하는 것


낯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고 우연히
분리된 두 시선이 만나고
나는 당신이고 내가 보는 것은 나인데
나는 당신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지
당신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
도와줘요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아무도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지 않고
아무도 살아서 그곳을 넘어가지 못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고
아무도 태양 주위로 날아오르지 않고


매일 당신은
깨어 있는 내 눈으로 떨어져 내리고
나를 불러 일어나라고 부추기네
벽의 창문을 지나 날개 펼친 햇빛이 흘러드네
아침, 백만의 밝은 대사들


아무도 나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고
아무도 내 눈을 감겨주지 않네
하여 나는 창문을 더 넓게 열고
하늘 저 너머 당신을 부르네
―?반향(Echoes)? 전문


2004년 7월 초. 프라하의 밤. 낮이 남겨놓은 열기와 습기 속에서, 관광객 넘실거리는 거리에서 바라본 성의 불빛. 카를 대교를 혼자 걷고 있었다. 소음을 뚫고, 섬광처럼 뻗어 나오던 기타 선율. 한 청년이 앉아서 부르던 노래. “그래서, 당신은 지옥에서 천국을, 고통에서 푸른 하늘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얼마나 당신이 여기에 있기를 바랐는지……” 시드 배럿(Syd Barrett)을 그리워해서 만든 노래, <당신이 여기에 있다면(Wish You Were Here)>. 애절한 연가가 나에게 온다. 얼마나 바라고 바랐는지, 당신은 모를 것인데,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아,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 당신이 여기에 없는 지금, 오래된 공포가 나를 붙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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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은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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