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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미국의 20세기는 자신감과 불안감을 먹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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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밀스 감독 '우리의 20세기'·더그 라이만 감독 '아메리칸 메이드'

[이종길의 영화읽기]미국의 20세기는 자신감과 불안감을 먹으며 자랐다 영화 '우리의 20세기' 속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불안감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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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미국 민주주의에 닥친 근본적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중략) 이 위협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감의 위기입니다. 우리 국가 정신의 본질이 맞닥뜨린 위기입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쇠퇴는 미국 사회와 정치의 기본 구조를 파괴하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1979년 7월 국영방송을 통해 설파한 '불안감 연설(Malaise speech)'이다. 그는 정치인, 사업가, 성직자, 시민들과 만나면서 얻은 중요한 교훈으로 자신감을 꼽았다. 자신을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리더십을 비판하거나 국가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자, 이 문제를 정치나 정책이 아닌 심리 문제로 진단했다. 카터의 여론조사 담당관인 패트릭 카델이 대통령에게 남긴, 훗날 언론에 유출된 메모에는 불안감이란 단어가 있었다. 하지만 카터는 역설적이게도 이 단어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란 단어를 열다섯 번 이상 언급했다. 국민의 집단 자신감이야말로 국가를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미국의 20세기는 자신감과 불안감을 먹으며 자랐다 영화 '우리의 20세기' 스틸 컷

할리우드에서 최근 제작된 영화 두 편에는 이 연설이 삽입됐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우리의 20세기'와 더그 라이만 감독의 '아메리칸 메이드.' 활용법은 상이하지만 모두 카터의 선견지명에 주목한다. 우리의 20세기는 산타바바라에서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싱글맘 도로시아(아네트 베닝)와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의 갈등을 다룬 영화다. 도로시아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사춘기의 아들을 걱정한다. 사진작가 애비(그레타 거윅)와 제이미의 친구 줄리(엘르 패닝)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불안감 연설은 도로시아와 제이미가 밧줄의 양 끝에 있는 것처럼 서로를 느낄 때 등장한다. 밀스 감독은 "1970년대 후반은 '현재'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부를 열망했던 1980년대와 그 이후에 펼쳐진 시대, 바로 다음에 펼쳐질 미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면서 "그 속에서의 갈등과 화해는 우리가 절대 돌아가지 못할 시대와 순수에 대한 슬픈 노래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미국의 20세기는 자신감과 불안감을 먹으며 자랐다 영화 '우리의 20세기' 스틸 컷


그 리듬과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실한 관계를 넘어 이해와 관계에 대한 작고 우아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모건 스콧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등 자기계발서를 비롯해 데이빗 보위 등의 펑크 음악, '자매애는 강하다' 등의 페미니즘 도서, 알폰소 무하의 아르누보 포스터, 버켄스탁(독일 신발 브랜드) 등이 열쇠로 작용한다. 도로시아는 펑크락의 희열과 예술과 로맨스의 위험한 매혹을 겪으며 제이미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경험한다. 모든 분열 안에 존재하는 우아함이다. 쉐어하우스에서 제기되는 개인주의, 탈권위주의, 남녀평등의식 등의 갈등을 봉합할 원동력이 된다. 이후 시대가 소비지상주의와 전통경시로 물들었지만, 그들의 삶은 그렇게 계속 흘러간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미국의 20세기는 자신감과 불안감을 먹으며 자랐다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스틸 컷


카터가 이런 세태를 내다보고 염려했을 때 정치비평가들은 정부의 실패를 국민의 탓으로 돌린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이어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등도 소비지상주의와 전통경시 경향의 확대는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감에 취해 세계 질서를 흔들었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그 상흔을 보여주기 위해 도입부에 불안감 연설을 배치하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제안으로 중남미에 무기를 밀반출한 민항기 1급 파일럿 출신 배리 씰의 실화를 소개한다. 찰나의 불법 행위로 돈다발을 거머쥔 씰은 세계 최대 마약 조직에까지 손을 뻗치다 사살된다. 국가에 이용만 당하고 죽음을 맞은 셈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미국의 20세기는 자신감과 불안감을 먹으며 자랐다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스틸 컷


파국은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찾아왔다.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미국의 지원 속에 파나마의 독재자로 군림했고, 엘살바도르·과테말라·니카라과 등도 미국의 불법 부당한 군사 개입으로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이때마다 민주주의와 정의 구현을 앞세웠으나, 내부적으로는 마약에 병들어갔다. 중남미 국가들의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취해 자초한 결과다. 노리에가는 물론 전 세계 마약 유통을 좌지우지한 파블로 에스코바르 등이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해줬으니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감은 그 사람의 지식, 능력, 의지를 보장하지 않는다. 능력이 부족해도 자신감이 넘칠 수 있고, 많은 이들은 이를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믿는다. 그러기에 카터가 느꼈을 불안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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