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염기훈(수원)은 서른넷. 권창훈(디종FCO)은 스물셋이었다. 나이는 열한 살 차이.
태어나자마자 공을 찼다고 해도 11년은 더 공을 찬 그 아우라가 그대로 경기장에서 묻어났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염기훈이 경기에 나간 30분 동안 한국은 확실히 달랐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우즈베키스탄과 0-0으로 비겨 승점 1을 추가,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A조 1위 이란에 이은 2위를 확정했다.
K리거들의 활약이 좋았다. 김민우(수원)는 선발 출전해 왼쪽 수비와 공격에 힘을 실었고 이동국(전북)도 교체카드로 나와 슈팅 하나를 기록했다. 특히 염기훈은 흐름을 바꾼 열쇠였다. 염기훈은 후반 18분 권창훈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 전까지 한국의 공격은 답답했다. 2선에서부터 공격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으면서 골소식이 나오지 않았다. 권창훈은 많이 뛰었지만 우즈베키스탄의 3선 압박을 뚫지 못했다. 드리블 후 패스를 시도하다 차단 당하는 장면도 꽤 됐다.
염기훈은 달랐다. 권창훈을 대신해 공격을 조율했다. 이전 왼쪽 날개를 맡아 왼발 크로스와 돌파, 세트피스 킥에만 집중하던 예전과는 다른 역할이었다. 염기훈은 소속팀 수원에서도 올 시즌 처진 공격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좋은 활약을 했다. 대표팀도 같은 효과를 노렸다. 기대대로였다. 염기훈은 경기 중간에 투입됐는데도 빠르게 시야를 확보하고 흐름을 읽었다. 베테랑의 힘이었다. 첫 터치 후에 침투패스를 했지만 수비에 막혔다. 염기훈은 2선을 지키면서 한국이 경기 막바지 공격을 풀어가도록 도왔다. 그 결과 왼쪽 수비수 김민우도 활발히 공격에 가담할 수 있었고 이동국의 결정적인 슈팅이 나오는 등 90분 중 한국의 가장 위협적인 장면들이 만들어졌다.
염기훈은 30분을 소화하며 한국의 월드컵 진출을 도왔다. 월드컵 본선은 아직 기약이 없다. 앞으로 지금의 몸상태와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생애 두 번째 월드컵 출전도 먼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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