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사용금지 DDT 검출농가 2곳, 나흘간 침묵
비난 여론에 농촌진흥청에 역학조사 의뢰 유입 경로 추적
육계에 피프로닐 살충제 사용 권고, 검사서도 누락
불신 극에 달한 소비자들, 계란·닭고기가공식품 등 소비 보이콧 움직임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유럽에서 논란이 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 검출에 이어 이미 수십년전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 성분까지 검출된 가운데 정부가 나흘간이나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헛발질을 하는 것은 물론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쉬쉬하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더욱이 정부 연구기관이 육계(식용 닭)에 피프로닐 살충제를 사용할 것을 권고한 것도 모자라 그 동안 육계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살충제 검사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누락돼 온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이 계란과 닭고기, 계란을 주 원료로 만다는 가공식품 등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돼 보이콧(거부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농촌진흥청에 DDT 검출 산란계 농가 2곳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조사를 의뢰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진청은 해당 농가의 토양이나 지하수 등을 조사해 정확한 유입경로를 찾아낼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경북지역 산란계 농장 2곳에서 맹독성으로 사용이 금지된 농약 DDT가 검출됐으나 나흘간이나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내놓은 후속 조치이다. 정부는 1973년부터 사용 금지된 DDT가 어떤 경로로 유입됐는지 전문인력을 투입해 확인할 계획이다.
DDT는 인체에 흡수되면 암은 물론 감각이상, 마비, 경련 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맹독성 농약이다. 국내에선 1979년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이들 농가에서는 DDT 성분이 기준치(0.1mg/kg)를 밑도는 각각 0.028·0.047mg/kg이 검출됐다. 방역당국은 DDT의 반감기가 수십 년으로 긴 데다 1970년대까지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점 등을 미뤄볼 때 DDT가 남아 있던 토양을 통해 닭의 체내로 흡수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DDT가 검출된 농장 2곳은 넓은 마당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닭을 기르는 '동물복지농장'이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계란을 비롯한 축산물의 생산단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맡고, 유통 단계를 책임지는 것은 식품의약품안전처다. 축산 농가에서 금지 살충제 등의 사용 실태를 감시하는 것은 농식품부고, 여기서 걸러내지 못한 살충제 계란이 유통되는 것을 막는 업무는 식약처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생산단계에서 살충제 사용 실태에 대한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고, 식약처도 유통단계에서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두 기관이 계란 위생관리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면서 살충제 계란 파동을 키웠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도 이번 사태를 키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4월 유통 중인 친환경 인증 계란들을 검사한 결과, 친환경 농가를 포함한 3곳에서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국은 곧바로 전수조사 등 대응에 나서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살충제 성분에 대한 경각심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제출 받은 '닭고기 살충제 성분 검사 실적'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 2분기까지 육계 농가 1291곳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면서도 정작 산란계(알 낳는 닭)에서 문제가 된 피프로닐 성분은 검사하지 않았다.
검사 후 해당 농가의 닭고기는 모두 '적합' 판정을 받고 유통됐다. 검사를 실시한 살충제 성분의 숫자도 들쭉날쭉했다. 2013년은 19종, 2014년은 21종, 2015~16년은 23종, 2017년은 21종을 검사했지만 이 안에 정작 '살충제 계란 파동'을 불러온 피프로닐은 없었다.
게다가 DDT 성분이 계란에서 나왔던 경북 영천의 양계농가 닭의 지방층에서도 DDT 성분이 검출됐다. 경북동물위생시험소는 모두 8마를 검사했다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DDT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 중 2마리는 잔류허용기준치를 초과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DDT가 잔류된 흙을 쪼아먹으면서 체내에 축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앞장서서 먹거리 불신공화국으로 만드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계란과 관련된 먹거리를 일절 소비하지 않으려는 움직임까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상황.
한 소비자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안전하다고 먹으라고 하는 계란은 난각표시도 엉망이었다"면서 "정부는 40년 전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DDT가 친환경 인증 계란에서 검출된 사실까지 숨기고 있었는데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정부가 보여준 이번 대응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면서 "먹거리 문제를 일으키면 강력히 처벌해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내놓기만을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