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임청각…독립운동가 9명 나와
일제, '불령선인'의 집안 규정하고 임청각 마당 가운데로 철길 부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며 임청각을 언급해 ‘임청각’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27일 임청각을 방문하고 지난 10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여름휴가지로 찾기도 한 임청각은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로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다.
이 임청각은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지었다. 1963년 1월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2호 안동 임청각정침군자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9월25일 안동 임청각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자신의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그는 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과 밭은 물론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과 상징이 되는 임청각은 석주 선생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9명이 가족 중에서 나오면서 명실공히 독립운동가의 산실로 굳어졌다. 아들 이준형(1875~1942) 공과 손자 이병화(1906~1952) 공, 동생 이상동(1865~1951) 공, 조카 이형국(1883~1931) 공, 조카 이광민(1895~1946) 공 등이 모두 독립운동을 했고, 부인 김우락(1854~1933) 여사와 며느리 이중숙(1875~1944) 여사, 손부 허은(1907~1997) 여사까지 하면 12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 같은 임청각을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했다는 이유로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집안이라고 규정하고, 1942년 독립운동의 정기를 끊어버리겠다며 임청각 땅의 상당 부분을 수용한 다음 마당 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놓았다. 이 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임청각은 99칸 중 70여 칸만 남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중앙선과 관련해 국토교통부는 임청각 바로 옆을 지나는 중앙선 선로를 옮기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이 끝나면 선로의 위치가 바뀌어 임청각과 철길 사이 거리가 6km 정도로 멀어진다. 이 공사는 2020년 말까지 마칠 방침이다.
안동시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문화재청과 함께 임청각 원형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4년 1억원을 들여 임청각 주변 시설정비에 이어 지난해부턴 4억3000여만원을 들여 보수 사업 등을 진행 중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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