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충청북도 청주시 오창과학산업단지에는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가 입주해 있다. 이곳에서 세계에서 수행되는 각종 기상관측 자료를 받고 기상용 슈퍼컴퓨터와 다양한 수치예보모델들을 이용해 미래 날씨변화에 대한 과학적 예측자료를 만든다.
기상청은 지난 16일 새벽 청주지역 기상 예보로 '오늘 장맛비, 내일과 모레 오후 소나기. 예상 강수량 30~80㎜'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센터가 있는 청주와 증평, 진천, 보은에 이틀간 최대 302㎜의 비가 내렸다. 청주에서는 한때 시간당 91㎜의 물폭탄이 쏟아졌다. 슈퍼컴퓨터가 자기 동네 일기예보조차 못 맞췄다.
기상청이 보유한 슈퍼컴퓨터는 모두 4대다. 국내 첫 기상전용 슈퍼컴퓨터는 2000년 일본 NEC에서 사온 SX-5 시스템이었다. 2005년 이후 2호기와 3호기를 들여왔다. 2014년 구입한 4호기 크레이 XC40는 당시 장비 가격만 5051만달러(567억원 가량)였다. 지난해 기준 장부가격은 442억원으로 부동산·무형자산을 제외하면 가장 비싼 국가재산이다.
4호기를 도입할 때 기상청은 "세계 기상청 분야에서 5위권 수준의 기상 예보 컴퓨팅 성능을 갖췄다"고 홍보했다. 기존 3호기에 비해 약 20배 이상 기상 자료 계산이 가능해져 전지구예보모델 해상도를 25㎞에서 2019년까지 12㎞ 이내로 개선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현재 기상청의 강수예보 정확도는 92% 수준이다. 기온예보는 1.5도 내외로 모두 오차 범위 안이다. 그러나 기상청 조사결과, 국민들의 체감정확도는 62%에 그쳤다. 기상청의 기상예보와 30%포인트의 괴리감이 있다.
'기상청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은 어김없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예보가 틀리면 기상청은 곤혹스럽다. 여론이 나쁠 때면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장비, 특수한 한반도 지형 탓으로 돌렸다. 이런 변명이 거짓말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슈퍼컴퓨터는 기상전용 4대를 포함해 모두 7대에 불과하다. 중국과 미국이 각각 168대, 165대를 갖고 있는 것과 큰 격차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기상청 4호기 슈퍼컴퓨터의 연산능력은 중국이 자체 개발한 슈퍼컴퓨터 '선웨이 타이후라이트'의 2.6%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슈퍼컴퓨터가 내리는 비와 눈을 막을 순 없다. 그렇지만 기록적인 폭설이나 폭우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슈퍼컴퓨터 성능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상청이 예보 소프트웨어를 잘못 구입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인재(人災)다. 부족한 예산과 인력에도 국민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슈퍼컴퓨터보다 할머니의 쑤신 무릎이 더 정확하다'는 농담이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
조영주 경제부 차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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