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에 놓인 범고래가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인해 임신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범고래의 주식인 왕연어의 번식을 높이는 방법으로 영양 섭취를 도와야 한다는 대안이 제기됐다.
29일(현지시간) 미국 ABC는 워싱턴 주립대의 샘 바젤 생물학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소개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범고래의 배설물을 모아 호르몬 성분을 분석한 결과, 3분의 2 이상의 범고래들이 유산했음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훈련받은 개를 보트에 태워 7년 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미국 워싱턴주 인근 바다에서 79마리에 달하는 범고래들의 배설물 샘플을 350개 가까이 모았다. 이들은 이 배설물 샘플 속 프로게스테론과 테스토스테론을 분석하고 몇 마리의 범고래가 임신했는지, 몇 주나 됐는지 등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배설물 속 DNA를 모아 분석했고 성별과 가족력을 확인해 각 개체들을 구분했다. 임신 과정을 무사히 넘긴 산모 범고래의 경우, 시간이 지난 후 새끼와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2008~2014년 사이에 임신한 범고래는 총 35마리였고, 그 중에서 목격된 새끼 범고래는 11마리였다고 한다. 즉 24마리의 범고래 번식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연구팀은 이 24마리의 경우 유산이 되거나 거의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범고래가 어른이 되는 시기는 인간과 비슷한 15~18살 사이다. 이때부터 가임기에 들어간 범고래는 40살까지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매년 새끼를 낳는 게 아니라 5년에 한 마리씩 낳는 수준이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암컷 범고래는 일생 동안 5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호르몬 분석 결과 이 24마리의 산모 범고래들은 영양 부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산모 범고래가 영양 부족을 겪을 때 나타나는 호르몬 성분을 밝혀낸 연구팀은 이 기록을 태평양 북서부 지역의 왕연어 무리의 개체수와 비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산모 범고래가 영양 부족을 주로 겪었던 시기는 왕연어의 산란 회귀 과정에 급격한 변화가 있던 시기와 일치했다.
왕연어는 대부분 바다에서 살지만, 산란기에는 태어난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최근 몇십년 간 진행된 도시화와 댐 건설, 남획, 환경오염 등의 원인으로 왕연어의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그 결과 왕연어의 개체수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미국 워싱턴주 북서부 퓨젓사운드 만에 주로 출연하는 범고래는 이 지역의 왕연어를 주식으로 삼고 있다. 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동물을 먹이로 삼는 범고래들은 물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범고래와 달리 이런 유산 문제를 겪지 않는다. 수십년 전만 해도 140여마리에 달했던 퓨젓사운드 범고래들은 현재 78마리로 그 숫자가 급격히 줄었다.
연구팀은 범고래의 유산을 방지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왕연어의 산란기 회귀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왕연어의 서식지를 훼손하는 오염이나 다른 요인들을 방지하고, 범고래에게 대안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29일(현지시간) 발간된 미국의 온라인 과학 저널 플로스 원(PLOS ONE)의 최신호에 실렸다.
아시아경제 티잼 박혜연 기자 hypark1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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