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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순진(純眞)과 순수(純粹)


[아시아경제 오상도 정치부 차장] 지난 1995년 봄, 덴마크 코펜하겐에선 젊은 영화감독들이 나서 '순수(純粹)의 서약'을 했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맞아, 작가주의와 기교 중심의 영화계 흐름에 반발해 내놓은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당시 영화계는 프랑스의 누벨바그 풍(風)이 지배하고 있었다. 작가주의 이론과 감독의 우상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영화의 상업화를 촉진했다.

라스 폰 트리에 등 4명의 덴마크 감독들은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영화는 감독 개인의 예술품이 되어선 안 된다"며 "인위적 요소를 배제하자"고 강조했다. 당시 선언문에는 이색 주장들이 담겼다. 음향 효과를 배제하고 인위적 필름 조작과 특수 조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순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등으로 요약된다. '순결'을 가장 비슷한 뜻으로 꼽을 만하다.

유의어 가운데는 '순진(純眞)'이란 단어도 있다. '마음이 꾸밈이 없다'는 뜻이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이를 놓고 순진함이 미숙함이나 무지함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래서 순진한 사람은 잘 속고 어리석으며 자기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든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순진함은 순진한 사람 스스로에게나 주변 사람에게도 독(毒)이 될 때가 더러 있다.


지난 26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 채용특혜 의혹 녹취조작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 당원이자,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지지자이며 대학원 제자인 30대 여성의 범행에 윗선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벌써부터 세간의 '뜨거운 감자'다.


일각에선 증언을 확보해 오라는 윗선의 독촉에 이 여성이 거짓 녹음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국민의당은 단박에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폐당(廢黨)의 위기에 내몰렸다. 안 전 후보도 정치적ㆍ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스승에 대한 존경심에서 무리수를 둔 개인의 과욕으로 치부해야 할까, 아니면 대선 직전 '큰건'이라며 확인도 없이 언론에 공개한 당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까.


순진한 사람은 속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순수함은 성숙함의 한 속성이며 현명함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순수함의 약을 받아먹어 세상이 바뀌거나 성숙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



오상도 정치부 차장 sdo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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