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오래돼 벗겨진 페인트와 때 묻은 에어컨 실외기가 먼저 보인다. 촘촘히 구획된 아파트 공간은 기하학적인 문양처럼 세밀하게 그려져 현기증이 날 정도다. 걸어놓은 옷가지와 간간이 열어놓은 창문이 변주를 만든다.
정재호 작가(現 세종대학교 회화과 교수)가 2014년 갤러리현대(먼지의 날들) 이후 3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그렸던 아파트 시리즈는 10여년 만이다. 작가는 “전보다 더디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은 현대의 집단적 건축공간인 아파트로 향한다.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김정대 인디프레스 대표는 “작가는 보여줘야 할 바를 작품에 함축했다. 전시제목인 ‘열섬’은 뜨거운 섬으로 홍콩을 뜻하는데 주로 오래된 아파트를 다룬다. 유년시절과 산업화로 연결되는 현대 초기의 70~80년대 건축물을 그린다. 그는 어릴 적 기억과 사물, 환경에 대해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했다.
고층아파트는 거대자본의 축적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자본을 쫓아 사람이 몰리고 그들의 욕망이 좁은 땅에 모여 구체적인 형상물로 실현된 것이다. 작가는 과열된 아파트 공간을 은유하며 도시 전체 문제에 접근한다. 사라져가는 옛 아파트에 대한 작가의 향수이자 저항의 표현이기도 하다. 새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 개혁이 화두다. 현대사회에서 ‘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디프레스에서 문을 연 정재호의 개인전 ‘열섬’은 내달 18일까지 계속된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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