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 외교가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냐'는 게 핵심이었다.
당시 주변 상황을 보면 이 같은 기대를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개월 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졌고 중국은 사드 배치에 보이지 않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대중 소비재 수출은 급감했고 관광객들은 발길을 끊었다. 사드배치의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해 그 향방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우리에겐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당장 눈에 보인 게 대선 직후 등장할 새 정부였다. 더군다나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사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에서 아직 변화는 없다. 중국에선 한류스타가 광고에 재등장하면서 '사드보복 조치가 풀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나타났지만 더 이상 눈에 띌만한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청와대가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혀 미국과의 관계만 묘하게 서먹해졌다. 이 때문에 사드 해결이 더욱 난항에 빠졌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문 대통령의 사드 해법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의도를 드러냈다. 배치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이행은 다소 늦추려는 의도 말이다. 청와대는 국방부의 보고누락과 약식 환경평가를 비판하면서 정식평가 실시를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전 정권의 합의라도 반드시 지킨다며 사드배치를 재확인했다. 배치는 약속대로 하지만 최소 연내 완전 배치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청와대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완전한 철수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드 문제를 풀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세계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또 다른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얼마 전 "집권 후 외교안보환경을 보니 거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외줄에 의존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드를 둘러싼 현 상황은 조선 임금이었던 광해군이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칠 때와 종종 비교된다. 예나 지금이나 전략은 비슷하다는 얘기다. 의도가 드러났다면 치열하게 설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다만 사드 배치 핵심 이유가 북한 핵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드라는 이슈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환기 차원에서 꺼내봤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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