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심판때와 같은 전략?
진술조서 부동의하면 재판부도 볼 수 없어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얼굴)의 뇌물수수 등 혐의에 대한 재판이 본격화되면서 박 전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가 노골화되고 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가 진행한 2차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참고인 진술조서 등 수사기록 대부분을 증거로 사용하는 데 반대했다. 이날 재판은 7시간 40분(휴정시간 포함) 동안 진행됐다.
검찰과 박 대통령 측 변호인은 재판 시작 직후부터 부딪혔다. 변호인단은 재판 심리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류증거를 조사하는 게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판부가 기각했다.
증거조사 과정에서 검사가 증언내용을 계속 읽어 내려가자 박 전 대통령 측 이상철 변호사는 "검찰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주신문 내용만 보여줘 재판부의 심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문제제기했다.
유영하 변호사도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 내용이 많고, 상당수가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것이어서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모두 불러 증인 신문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난색을 표했지만 유 변호사는 "추호도 재판을 연기할 의도가 없다"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는 피고인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증거로 쓸 수 있다. 판사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증거 효력을 가져야만 판사가 읽을 수 있다. 진술조서에 대한 부동의가 많을수록 직접 증인을 출석시켜 증언을 들어야 해 재판이 길어진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지난 23일 1차 공판에서도 재판부가 제시한 매주 4회 재판을 줄여달라고 요구해 시간 끌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도 국회 소추위원단이 검찰로부터 받은 진술조서 부동의와 무더기 증인신청을 해 시간 끌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헌재가 대통령 궐위 상태로 빚어지는 혼란을 국가위기 사태로 규정하고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려고 하자 이를 정치적 음모로 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변호인이 재판관에 대한 막말과 모독성 발언을 해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형사재판에서도 같은 전략을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구속 기한까지 심리를 끝내지 못하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한편, 재판부는 오는 29일부터 삼성 뇌물 사건과 관련한 증인 신문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다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나란히 재판을 받는다. 다음 달 1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공판 기록을 조사한다.
다음 달 7일에는 최씨의 조카 장시호, 김종 전 차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사건의 공판기록을 조사하기로 했다. 8일에는 검찰의 서증조사에 대한 박 전 대통령 측의 의견을 종합해서 듣는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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