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표 기자]누구나 아끼는 물건이 있다. 오래전 입학 선물로 받은 시디 플레이어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끼는 음악재생 앱은 없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참에 가깝다. 지난해 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IT기업을 일명 'FANG'이라 부른다. 페이스북(Facebook)·아마존(Amazon)·넷플릭스(Netflix)·구글(Googl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미국 다우지수가 2.2% 하락한 가운데 이들 4개 기업의 주가는 평균 83% 올랐다. 모두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그러나 이들 서비스 이용자들이 소프트웨어 기업 그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 '애플빠', '삼성빠'는 이는 있어도 '페북빠'는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하드웨어와 소프웨어의 차이일 수 있다. 하드웨어는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써오던 책상은 언제까지고 좋아할 수 있다. 오래돼 빛이 바래고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낡아빠져도 상관없다. 못난 대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상 한켠에 붙어있을 낡은 로고나 스티커가 기억 속에 동시에 각인된다.
반면 PC운영체제 '윈도97'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윈도97이 사랑스럽다고한들, 윈도97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이뤄진다. 그리고 변한다. 기억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없다. 이용자가 잠시 손을 뗀 사이 서비스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거나 아예 종료되기 일쑤다.
MS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고 수익성 높은 운영체제와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이었지만, MS에 열렬한 성원을 보내는 이용자는 극소수였다.
MS가 가정용 게임기 '엑스박스'를 출시하면서 하드웨어 업체로서의 면모를 드러냈고 이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MS는 이제 서피스 프로, 서피스북, 서피스 스튜디오 그리고 서피스 랩탑을 생산하고 있다. 유려한 디자인과 기술적 혁신을 무기로 MS는 IT업계의 '테크기업'으로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아마존은 역시 전자책 리더기 '킨들'과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를 출시하면서 테크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소니와 HTC는 가전·휴대전화 시장에서 선두에 선 적은 없으나, 많은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 혁신자'로서의 소니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소니'라는 브랜드에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들은 팬들로 하여금, 그들의 애정을 담아낼 수 있는 물리적인 요소를 제공했다.
반면 순수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페이스북은 그렇지 않다. 페이스북 이용자수가 20억명을 넘어섰지만, 페이스북 기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IT전문매체 더버지의 블라드 사보브는 지난주 구글의 2017 개발자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구글의 AI와 머신러닝의 효과, 이를 활용한 서비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가 허전했다. 구글이 내놓은 것 중엔 실제 보고 만질 수 있는 기기(gadget)이 없었다. 눈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소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임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개인적으로 자주 쓰고 좋아하는 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앱이 만족스럽다고해서 그 감정이 제조사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반면 하드웨어를 사용하면, 그 경험이 거의 대부분 제조사에 대한 충성으로 전환된다. 워크맨을 써봤던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지언정 소니를 잊지는 못한다. 이는 오늘날 애플의 큰 성공을 설명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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