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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난쏘공'은 아직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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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39년…세상 변했어도 적폐 여전, 한국사회 남겨진 과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공터를 가로질러 우리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 담을 쳐부수었다. 먼저 구멍이 뚫리더니 담이 내려앉았다. 먼지가 올랐다. 우리는 말 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그들은 뿌연 시멘트 먼지 저쪽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서울 낙원구 행복동 '난장이 가족'의 보금자리는 파괴됐다. '난장이'와 그의 아내, 두 아들과 막내딸이 냇가에서 자갈을 져나르고, 폐목재를 하나둘 엮어가며 완성한 집이 그렇게 사라졌다. 가족들은 파괴의 현장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물어진 담과 뿌연 시멘트 먼지 앞에서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가족의 모습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 소설에는 개발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폭력의 그늘'이 담겨 있다. 국가를 앞세운 합법적인 폭력과 돈을 앞세운 민간의 폭력이 지배했던 세상의 처절한 민낯이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힘의 논리 앞에서 숨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세상, 저항의 깃발을 세우는 사람은 철퇴를 피하기 어려웠던 냉정한 현실이 그 소설에 녹아 있다.


[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난쏘공'은 아직도 날고 있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한국 문학작품 최초로 300쇄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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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집이 허물어지기 전 어머니는 '철거 계고장'을 받고, 무너지는 기분을 경험했다. 실제로 '불행의 통보' 이후 난장이 가족은 서서히 파괴됐다. 그들의 꿈과 희망은 깨지고, 바스러진 뒤 흙먼지처럼 사라졌다.


난장이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달나라에 가서 그곳 천문대의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을 맡겠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직업을 바꿔서 새 출발을 할 생각도 했다. 난장이에게는 '앉은뱅이'와 '곱사등이' 친구가 있었다. 몸은 불편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들 셋이 함께 약장수 행렬에 합류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가족은 난장이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아픈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난장이는 외로웠다.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도전도 해보지 못한 채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공장 굴뚝 위에서 달을 바라보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마음을 달랬던 난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돼 가족의 애를 태웠던 그는 굴뚝 속에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난장이의 장남은 슬플 겨를도 없었다. 가족 부양이라는 짐을 떠안았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학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틈만 나면 책을 읽는 그를 난장이는 늘 대견하게 생각했다. 난장이는 세상의 폭력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으로 저항했지만, 장남은 달랐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장남의 공책에는 알 듯 모를 듯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장남은 노동운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사회의 모순을 바꾸고자 전면에 나섰지만,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남을 보며 난장이의 아내는 다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 난쏘공이 전하는 스토리에는 음울한 기운이 깔렸다.


달콤한 사랑 얘기나 장밋빛 희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난쏘공은 1970년대 '유신의 그림자'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간의 기본권을 짓밟던 시절에 탄생한 작품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를 견디고 따뜻한 사랑과 고통받는 피의 이야기로 살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세희는 소설 집필 과정을 설명하며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글을 써가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문학과지성, 문학사상, 뿌리깊은나무, 세대, 한국문학, 대학신문, 문예중앙, 창작과비평 등에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실었던 단편 소설들을 모아 난쏘공이 완성됐다.


단편소설의 제목은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회전 ▲기계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등이다.


서로 다른 내용의 소설처럼 보이지만, 개별 작품 하나하나에 난장이 가족과 그 주변 인물의 사연이 녹아 있다. 이러한 사연을 모아 낸 난쏘공 초판 1쇄가 나온 시점은 1978년 6월이다. 무려 39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 책을 공유했다.


난쏘공은 1970~1980년대 학번을 넘어 1990년대, 2000년대 학번에 이르기까지 대학생 필독 도서의 자리를 이어갔다. 난쏘공에 담긴 메시지에 깊은 울림을 느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난쏘공'은 아직도 날고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출간한 '이성과 힘'은 300쇄 한정으로 판화가 이철수의 '뫼비우스의 띠'를 독자들에게 선물했다.


난쏘공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작품이다. 난쏘공은 한국 문학작품 중 최초로 4월 300쇄를 돌파했다. 난쏘공을 출간한 조중협 이성과 힘 대표는 "1978년 초판을 발행한 이래 39년 만이다. 40년 가까운 시간을 생각한다면, 137만의 발행 부수는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난쏘공은 저자의 바람대로 죽지 않고 살아, 세대를 이어 지금까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문학작품이 이뤄내지 못한 300쇄 기록 돌파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광고와 문예지의 지원, 문단 네트워크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도 독자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난쏘공에서 제기한 수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문학평론가 권성우가 난쏘공 30주년 기념 문집을 통해 진단한 내용이다.


권성우 평론가의 진단이 나온 지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난쏘공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1970년대와는 다른 세상이다. 난쏘공 탄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문민정부도 탄생했고, 평화적 정권교체도 경험했다. 부산의 고졸 출신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됐고, 그의 친구인 또 다른 인권변호사가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제 사회의 모순은 사라지고, 희망의 시대로 바뀌게 될까. 세상은 분명 변했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난장이 가족을 해체했던 사회의 모순과 국가의 폭력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형태를 달리한 채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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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불행의 역사, 그 원인을 제공했던 '적폐'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조세희의 경고 메시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됐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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