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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마주본다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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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마주본다는 운명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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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메르 왕의 팔레트'는 이집트 초기 왕조시대(기원전 2925~2575년)의 미술품이다. 나르메르 왕이 적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장면이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한다고 본다. 미술사적으로는 개별 장면을 선명하게 처리하고 왕을 신성한 존재로 표현하는 등 고대 이집트 미술의 전통적인 인물표현양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한다. 부조로 표현한 왕의 머리는 옆모습이지만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어깨와 가슴이 정면을 향한 반면 다리는 다시 옆모습으로 그려 동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예술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건을 이야기하되 한정된 공간에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을 했다. 이 선택을 당대의 양식이 이론으로써 뒷받침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가운데 배치함으로써 작품공간에 형식적 통일성을 주고 인물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해 신분의 차이를 알려준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는 이집트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몸 전체를 표현할 때 머리는 항상 측면, 어깨와 몸통은 정면이다. 허리 아래는 다시 측면으로 표현한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작품들에는 밀랍으로 봉인한 시간의 일부를 들여다보듯 숨을 멈추게 하는 마성이 있다. 정면, 즉 내 쪽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능적인 상반신은 순간적으로 아찔한 속도감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정면의 매혹 또는 공포.

내게 '정면'은 강박관념이다. 나는 청소년기를 문학소년 흉내를 내며 보냈다. 시와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잡지도 사서 읽었다. 거기 실린 시인이나 소설가의 사진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하나같이 카메라를 외면한 채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물론 창작의 고통 내지 고뇌 때문이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똑바로 바라보리라. 당신도, 세상도.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카메라 렌즈와 눈싸움을 했다. 20대 청년이었으므로 고집스러웠다. 사진작가가 불편해 했다. 그는 내 시선을 담은 사진을 여러 컷 찍었다. 강렬한 눈빛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착각이었다. 잡지에도 시집에도 그런 사진은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잡지나 책에 들어갈 '필자사진'을 찍을 때 지금까지 한 번도 카메라 밖을 바라보지 않았다. 늘 렌즈를, 그럼으로써 미지의 독자를 바라보고 눈을 맞추었다. 정면집착증.


정면을 바라보는 행위는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대한다는 뜻이다. 누군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면 나는 우선 흘끗 그쪽을 돌아본다. 그 신호가 범상치 않은 곳에서 왔거나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일을 지시한다면 몸을 돌려 정면으로 바라본다. 제대로 된 대화가 비로소 시작된다. 젊은 연인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그들이 마주 서서 시선을 맞바꿀 때다.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 남녀가 긴 시간을 각기 다른 곳에서 보내고 운명의 이끎에 따라 기어이 한 곳에서 마주친다. 그들은 먼저 시선을 돌려 확인하고 그 다음 마주본다. 장만옥과 여명이 출연한 영화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 무릇 운명이란 그토록 마주치는 일이 아니던가. 등려군이 노래한다.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앞으로 몇 주 동안 '가슴'에 대해 쓰겠다. 심장, 곧 '마음'이 머무르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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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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