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다가오는데 안 어울리게 으스스하다. 수면 아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면서 그런 것 같다. 교복을 벗은 이후로는 대통령이 과거 군화 신었던 발로 국민을 뭉개는 시절은 겪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살 때는 천지 분간 못하는 애송이였고.
그래서인지 요즘 상황이 더욱 혼란스럽고 어지럽기만 하다. 국가가 법 테두리 밖에서 조직적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후진’ 행태는 사그러든 줄 알았다. 역사의 기차가 이미 지나친 역(驛)으로 여겼다. 역주행을 하더라도 설마 그렇게까지 가겠나 싶었다.
현실은 작은 편린으로 되새겨진다.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며칠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내놓은 ‘반성문’의 일부다. “지원 배제 사태로 상처받으신 예술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남아있는 일말의 양심이 발로한 것인가. 어쨌든 우리는 힘과 용기가 부족하면 비굴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한편으로 왠지 애잔하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지내다 그 때의 경험을 토대로 대통령의 실체를 폭로해온 이는 그간의 두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협박 메일을 받았고 한산한 곳에서는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고 한다. 아이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고도 했다. 으스스한 얘기 아닌가.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은 적군에 잡혀 처형당하는 순간 하늘을 보며 절규하듯 “프리덤(자유)”을 외친다.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윌리엄 월레스가 실제 모델이다. 용기는 자유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처절한 결기였다. 또 어찌 보면 이 때 자유는 칸트가 설파한 개념으로도 이해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디를 갈 지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욕구나 기호, 사회적 관습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칸트의 자유는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충실한 것이다. 내가 정한 원칙대로 사는 것이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가치이자 존엄성의 발현, 자유에 대한 의지다.
공식적인 체제 속에서 용기를 강요받아야 하는 시대에 산다는 것은 지극히 살 떨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야만의 시절은 일단 막을 내리게 됐지만 앞으로 그 어떤 역주행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용기가 필요할 때 도피하면 잠시의 안락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쓰디쓴 굴종의 열패감이 온 삶을 난도질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나 용기를 내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시험대에 섰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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