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잠' 파문 계기, 외국사례 보니... 벌거벗은 조지 부시 그림 논란, 그 이후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이구영 화가의 '더러운 잠'이 논란에 휩싸였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 한 작품이다. 최순실이 몽롱한 표정으로 잠든 박 대통령의 곁에 시종처럼 서 있다. 창문 너머 가라앉는 세월호가 보인다.
해외에선 '정치인 패러디' 문제 없어
유사한 해외 사례가 있다. 지난 2004년 미국 워싱턴의 시립 박물관에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이 전시됐다. 그림 속에는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가 벌거벗은 채 누워 있고 옆에는 부통령 딕 체니가 시추탑 모양의 왕관을 들고 있다. 뉴욕서 활동하는 케이티 디드릭슨이라는 여류화가가 그렸다.
이 그림은 하루만에 전시 목록에서 제외됐다. 남성 혐오 논란이나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켜서는 아니었다. 단지 시립박물관이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며 아이 동반 가족이 많이 관람하는 장소라는 이유에서였다.(…라는 게 시립 박물관의 공식입장이다.) 물론 정부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작가는 가족 관람객이 보기에 적절치 않다는 박물관측의 입장에 동의했다. 그리고 작품의도를 살릴 수 있는 더 적절한 전시장소를 찾겠다고 했다. 몇몇 매체가 이 해프닝을 기사로 썼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처럼 그림을 훼손하거나 전시장에서 소란을 피운 이는 없었다. 미국에서만 매년 수도 없이 정치인 패러디가 쏟아지지만 이를 문제삼는 이들도 없다.
미국 뿐이랴. 한겨레의 여행 칼럼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에는 정치 풍자가 자유로운 아르헨티나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벌거벗은 남자가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있었고, 벌거벗은 여자가 그물 스타킹 차림으로 사타구니에 차고 있는 딜도를 남자의 항문에 반쯤 밀어 넣은 상태로 활짝 웃고 있었어. 성인용 잡지인가, 했는데 다시 보니 그 그림이 실린 지면은 신문이었어. 이 여자는 크리스티나고, 모자 쓴 남자는 방송 피디야.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에 그려진 ‘678’은 아르헨티나 공영 방송국을 가리켜! (중략)
크리스티나는 2007년 말부터 2015년 말까지 재임한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크리스티나가 공영방송을 제 맘대로 하던 걸 풍자한 그림이라고 설명했어. 가령 저 자리에 크리스티나 대신 대한민국 대통령을, 678 방송국 피디 대신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그려 넣은 그림이 신문 전면에 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겨레, 2016. 11.9)
'여혐' 문제 삼기보다 작가 의도 우선해야
여성 정치인을 풍자화 하는 일은 여성혐오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조심스럽다. '더러운 잠'도 여성이라는 젠더를 비하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작가의 의도에 집중해야 한다. '더러운 잠'은 어지러운 바깥 세상은 나몰라라 하는 권력자의 나태함을 비판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7시간이라는 공적인 영역에 사적인 영역을 연계시킨 것이다. "업무시간에 무엇을 했냐"는 상사(국민)의 질문에 “그건 여성의 사적인 영역이라서 밝힐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부하(박 대통령)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부하가 사적 영역이라고 말하는 순간 상사의 머릿속에는 "업무시간에 땡땡이(?)를 부리며 무슨 짓을 했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상상은 '국민의 한사람'인 이구영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참담한 현실과 무심한 권력이라는 두 주제를 극명히 대비시키기 위해 누드 작품 패러디를 택했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구영 작가는 2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적절성이라든가 표현의 수위라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더러운 잠이) 정확히 풍자 예술의 범주 안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해외 사례를 보자. 지난 해 미국 대선 기간에 수없이 많은 힐러리 클린턴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다. 클린턴은 패러디 작품 속에서 창녀가 되기도 했고 벌거벗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젠더의 문제로 확장시킨 사례는 전무하다.
표현·논쟁은 무한 자유 보장…경계할 건 파시즘
5년전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이건희, 박정희, 박근혜, 김일성의 어깨에 고양이를 얹은 패러디 연작을 선보였을 때다. 그녀에게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 패러디에 관한 의견을 물어 봤었다.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의 얼굴에 코알라를 합성하거나 혐오스러운 괴물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들이 한창 유행이었다. "그 정도면 고인 능욕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녀는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자기의 잣대로만 다른사람의 생각을 재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거다. 표현에 있어 경계가 있어선 안된다. 낸시랭은 "서로 다른 시간과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본 집단은 좋게 볼 수 있고 불이익을 당했다면 나쁘게 보겠죠. 자유롭게 보고 즐기고 논쟁하는 게 필요해요"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법정 시비로까지 번지는 건 경계했다. "촌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 하는 사람의 명예가 훼손됐다 싶으면 법이 있잖아요. 고소하고 싶으면 대한민국 법에 따라 고소를 하시면 되고요. 하지만 법적인 문제까지 가는 건 분명 ‘촌스러운 일’입니다".
'여혐'이니 '표현의 자유'니 논쟁을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국민들이 누려야할 특권이다. 그러니 새누리당도 구멍가게 주인도 '더러운 잠'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낸시랭이 말한 법적인 절차도 무시하고 오로지 '충성! 충성! 충성!'을 강요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합리적인 보수'라고 칭한다. 전시회장에 난입해 '더러운 잠'을 훼손한 무리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건강한 토론이 있는 사회를 좀먹는다. 그들의 서북청년단처럼 용감무쌍한 활약(?)을 보며 본인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빨갱이', '홍위병'의 그림자를 느낀다.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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