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귀국과 함께 대선정국으로 옷을 갈아입은 정치권의 요즘 화두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유력 주자의 공식적인 대권 출마 선언이 전무한 여권에선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보수진영의 헤쳐모여를 염두에 둔 반 전 총장과 아직 대권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같은 자리에서 각기 다른 꿈을 꾸는 듯한 2인(人)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반기문 전 총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반 전 총장은 대선 정국에서 조직과 자금력의 열세를 딛고 단박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묘수를 놓고 막판 장고에 돌입했다.
24일 기독교 단체를 돌며 종교계 민심 얻기에 나선 그는 정치적 '선택지'가 무척 좁아진 상태다. 독자 창당이나 특정 정당 입당보다 '소극적 연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뿌리부터 보수인 정치 성향을 애써 감추지 말고 완연한 보수색을 드러내자는 캠프 내 의견도 비등하다.
이르면 25일께 윤곽을 드러낼 반 전 총장의 대선 로드맵은 이같이 정책연대를 기반으로 한 범보수 규합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설 연휴 이후 조금 더 무소속으로 외곽에 머문 뒤 세력 형성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그는 최근 확연히 오른쪽으로 치우친 행보를 띠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전날 연대와 관련, "문을 닫았다"고 선을 그었다. 영입에 적극적이던 바른정당도 다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실패한 사람들과 같이 다니며 명확한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은 탈(脫) 충청, 탈(脫) 친이(친이명박)ㆍ친박(친박근혜)이란 과제도 떠안고 있다. 일각에선 반 전 총장이 새누리당을 탈당할 충청권, 수도권 의원들을 규합해 원내 교섭단체를 만든 뒤 추후 새누리당과 합당할 것이란 얘기도 돈다.
전날 새누리당 초ㆍ재선 의원들과 만난 것도 연장선 상에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새누리당 초ㆍ재선 의원들이 반 전 총장 측에 합류할 것이란 설명보다, 이들이 반 전 총장의 새누리당 입당을 타진했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돈과 조직을 지닌 새누리당은 여전히 반 전 총장에게 매력적인 존재다. 반면 지지율 답보상태에 빠진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반 전 총장 측은 친인척 관련 악재에 발목이 잡히면서 위기를 맞았다. 전날 터진 조카 주현씨의 병역기피 의혹에 여지껏 해명을 내놓지 못하면서 본격적인 검증 무대에서 아마추어식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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