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일은 기자다. 2014년 그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문건을 입수해 최초 보도했다.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이다. 문건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했던 정씨가 비선실세로 위세를 과시하고, 본인이 천거한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소위 청와대 내 '십상시'와 수시로 만났다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이 사건으로 조 기자는 회사 경영진, 선ㆍ후배 기자들과 함께 청와대 비서관 등으로부터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25시간 동안 검찰 특수부의 조사도 받았다.
당시 검찰은 문건 내용의 허위 여부와 청와대 문건의 불법 유출 여부를 조사했다. 검찰은 "정윤회의 국정개입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당시엔 그녀의 국정개입 의혹을 수사할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윤회 문건 유출 당사자로 지목돼 검찰 조사를 받던 최경락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를 암시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병우였다.
조 기자는 "절친한 경찰이 가족을 남기고 그런 결정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 역시 위협을 느꼈다. 12일 헌법재판소에 나온 그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사찰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고, 신변 위협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호신용 칼까지 갖고 다녔다. 출근 때마다, 일을 위해 취재원을 만나고 기사를 쓸 때도 아이들이 염려되고 눈에 밟혔을 것이다. 퇴근길엔 종종걸음을 쳤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이 그만을 향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터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그 와중에 그의 아내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그 또한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권력의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제나마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대통령 주변에서 돈과 권력을 휘두르던 주구(走狗)를 향해있다. 비선실세의 '아바타'로 전락한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속도를 내고 있다.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던 대통령은 "억울하다"며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수족들(이재만ㆍ안봉근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억울함(?)을 풀어줄 생각도 않고, 종적을 감췄다.
지난 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나선 조 기자를 아주 오랜만에 봤다. "나를 조사한 만큼만 검찰이 수사를 열심히 했다면 정윤회 문건의 진실은 밝혀졌을 겁니다. 국정운영의 두 핵심인 내각과 비서실 최고 실세들은, 검사들은, 언론은, 우리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들은 직업적 소명에 충실했나요." 퇴근길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김민진 사회부 차장 ent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