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지원지 유럽은
지멘스·BMW 등 정책지원 힘입어
디지털기술 접목한 제조혁신 선도
일자리 감소 등 사회불안 극복 숙제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4차산업혁명에서 중요한 건 기업 크기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다. 대기업은 거대한 물고기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의 조합으로 네트워크화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바프)
"디지털혁명은 과거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과 같은 위상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가 일하고 사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양상은 과거 혁명들보다 훨씬 더한 수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독일 SW업체 SAP 최고디지털책임자 조나단 베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4차산업혁명'이란 화두가 제시된 후 1년 가량 지났지만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각국에서 이를 둘러싼 논의는 더 활발해졌다. 3D프린터 집짓기 같은 건설업이나 제조업 등 업역도 다양해졌다. 해마다 열리는 포럼인 탓에 최근 수년간 거론됐던 주제들이 몇 달 만에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주요 국가의 정부는 물론 거대한 글로벌기업까지 이해관계가 직접 얽힌 데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단면을 짚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4차산업혁명에 대비해 분야별로 나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정보통신(IT)ㆍ가전업체는 물론 내로라하는 첨단기업이 모여 막을 연 CES 2017의 화두는 연결(connectivity)이다. 컴퓨터ㆍIT 기술의 발달로 자동화 생산체계의 막을 연 게 3차 산업혁명이라면 방대한 데이터간 교환과 매개, 그로 인한 상호작용을 토대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젖힐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獨 인더스트리4.0ㆍ英 핀테크…차세대산업 육성 활발 = 독일 대표기업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은 '스마트공장'을 가장 잘 구현한 모델로 꼽힌다. 연간 1000여종의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 생산공정에 있는 제품과 설비가 상호통신을 하는 게 특징이다.
최근 만난 게르하르트 포크바인 지멘스 디지털기업설계 디렉터는 "자동화 수송시스템으로 소재를 15분 안에 창고에서 기계까지 전송하며 24시간 안에 전 세계 6만여 고객에 배송될 제품을 생산 가능하다"면서 "1980년대 완공 때와 비교하면 생산면적과 노동자는 비슷한 수준인데 생산량은 9배 가까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제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와 민간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하이테크 전략을 추진했다. 이후 2011년 들어 '인더스트리4.0'이라는 구체적인 실천계획에 따라 지멘스와 쿠가 등 선도기업과 정부ㆍ학계 등이 함께 대응하고 있다.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머지 않은 미래에 생산에서 판매까지 이어지는 제조업 전반의 체계가 크게 바뀔 것이란 우려에서 시작됐다.
포크바인 디렉터는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생산라인 구조도 바뀌어야 했다"면서 "미래 생산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속한 부품공급망, 생산라인간 밀접한 연결, 나아가 판매까지 이어주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혁신에 나선 건 지멘스뿐만이 아니다. BMW의 본사가 있는 뮌헨공장은 조립공정 작업자에게 스마트워치를 활용토록하는 방안을 시범도입했다. 완성차제작은 자동화가 상당부분 진행돼 있지만 막바지 조립공정은 여전히 사람 손길이 많이 닿는 편이다. 스마트워치 등을 통해 생산공정 전반을 디지털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을 소개한 아드레안 슈미트는 "노동자의 연령대나 작업숙련도와 상관없이 언제나 비슷한 근무여건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스포츠용품업체 아디다스는 지난해 초 일부 물량을 자국 내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향후 자국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 생산량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코트라 뮌헨무역관의 조세정 차장은 "인건비나 현지 물류비 등의 이유로 지난 20~30여년간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신흥시장으로 공장을 옮기는 일이 많았지만 다시 유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로봇이나 디지털기기로 생산 가능한 부분이 많아진 데다 디자인, 제작기간도 훨씬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국 내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일찌감치 금융산업에 눈을 돌린 영국은 IT기술을 접목해 핀테크 육성에 한창이다. 런던이 세계 제일의 금융허브로 꼽히는 점에 착안,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정부는 세제지원ㆍ규제완화로 기업이 커나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핀테크 스타트업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회사를 키워나가는 선순환구조가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모델이 유럽 최대 핀테크 육성기관으로 부상한 '레벨39'다. 런던의 금융중심지 카나리워프의 원캐나다스퀘어 빌딩 39층에 있는 이곳은 스타트업 220여곳이 입주해 있다. 스타트업 육성업체 엑센트리에 따르면 초기 스타트업이 회사가치를 1조원으로 키우는 데 2014년에는 9개월 가량 걸렸지만 이듬해 6개월로 줄었다. 핀테크시장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이 기간은 더 짧아질 전망이다.
에릭 반 더 클레이 영국 무역투자청 자문그룹 의장은 "기업가비자를 비롯해 신생기업에 투자하면 세금을 감면하는 제도, 크라우드펀딩 등 각종 정책은 영국 내 핀테크기업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 장밋빛 미래? NO!" = 기술개발에 따른 인류의 발전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다. 산업혁명 초창기 러다이트 운동이 불거졌듯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데 따른 일자리 감소, 부의 편중화 같은 부정적 우려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4차산업혁명과 관련해 직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본 비중이 44.7%로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보다 3배 가량 많았다. 특히 금융보험 관련직종이나 관리직, 전기전자ㆍ기계 관련직종, 운전ㆍ운송직종의 경우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미래 일자리를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찌감치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기반을 닦는 데 주력했던 유럽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클라우스 마인처 뮌헨공과대 교수는 "EU 연구결과 향후 10년 새 산업체 일자리 40%가 없어지는 등 큰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불안은 사회보장제도 같은 정치적 협의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테판 밀러 독일 연방 교육연구부 의회비서관은 지난해 1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기업은 시스템이 바뀌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데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서 "좋은 인프라나 기술만으로 소용이 없으며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의 위험성, 기술발달에 따른 사생활침해 등 부수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는 게 현실이다. '3차산업혁명'을 쓴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기존의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한 생산체계가 잠재력이 여전해 4차산업혁명으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구조, 일부 품목에 한정된 수출집중도처럼 국내 산업계가 가진 한계점도 4차산업혁명 시대에 극복할 과제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업구조를 단기간 내 바꾸거나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4차산업혁명에서 다루는 가지들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당장 끌어올리긴 어렵지만 국가별 여건에 맞춰 최적화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인처 교수는 "독일에서도 인더스트리4.0은 중소기업에는 부담이 커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면서 "국가별 현실과 주어진 여건을 충분히 감안해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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