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이미 신뢰를 잃은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길 기업이 있을까요? 시장에서 안진의 회계보고서를 믿지 못하면서 기업의 신뢰마저 떨어지게 됐습니다."
검찰에 직접 기소된 딜로이트안진과 감사 계약을 맺은 한 기업 관계자는 안진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실망을 넘어 계약 해지마저 고려해야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계업계 2위 안진 회계법인이 27일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회계를 방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 안진과 계약 관계를 맺은 상장사들이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것.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27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상 주의ㆍ감독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안진 법인을 기소했다. 대형 회계법인의 임직원이 아니라 법인이 직접 기소되는 것은 처음이다.
검찰의 기소 직후 안진은 입장자료를 내고 "검찰의 법인 기소는 전혀 근거가 없다"며 "대우조선해양 등 이해관계자들의 강력한 압박에도 재무제표 재작성이라는 '옳은 일'을 요구하는 등 감사 업무에서 어떤 위법한 일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안진은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이번 검찰 수사 결과와 자체 감리결과를 토대로 최고 등록 취소 처분까지 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건이 부각되면서 국민 여론이 더욱 악화돼 안진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간 금융당국은 회계법인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안진은 2011년에도 분식회계 문제로 벌금 1000만원의 처벌에 그쳤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법인 등록 취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안팎의 관측이다. '외부감사ㆍ회계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위법 행위를 한 회계법인 등 감사인에 대해 최고 등록 취소부터 1년 이내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회계법인과 3년 계약을 하는데, 1년 영업정지만 하더라도 계약 해지 가능성이 커진다. 안진의 책임으로 계약 해지되는 경우 안진은 기업들에 막대한 위약금까지 물어야만 한다.
또 안진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가 안진과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딜로이트 입장에서는 한국시장에서의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뢰를 잃은 안진과 더 이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딜로이트는 브라질에서 비리 문제로 160만달러 벌금 조치를 받는 등 다른 국가에서도 위기에 처해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분식회계, 부실 감사 등을 저질러도 회계사만 처벌되고 법인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벌금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서는 회계업계가 신뢰를 다시 얻기가 어렵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회계법인과 악습에 가까운 부패 고리를 끊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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