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구귀 기자] 시중은행들이 이사회 의결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 노동조합과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금융공기업과 같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신한·KB국민·농협·KEB하나 등 5대 시중은행은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SC제일·씨티·수협은행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 은행은 도입 시기 등 구체적인 사안은 노조와 협의키로 했다.
이렇게 노조 측과의 협상 없이 사측이 일방적으로 도입을 결정하면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은행들의 노동조합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가 법적인 다툼의 여지가 있어 실제 도입까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금융노조는 시중은행의 성과제 도입은 당국의 압박에 따른 조치였다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금융당국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하도록 시중은행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이런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긴급 지부 대표자 회의를 개최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노조는 현재 시중은행의 이사회 의결 상황을 점검한 후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조는 "지난 9일 금융위원회로부터 오늘 이사회 의결을 무조건 강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만일 강행한다면 관련 책임자는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로 규정하고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은행 개별노조도 반발하고 있다. 농협은행 노조는 이날 오후 성과제 도입에 대한 반발로 행장실을 점거하며 투쟁수위를 높이고 있다.
앞서 시중은행들은 지난 7월 은행연합회가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를 내놓은 이후 본격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금융노조의 협상은 진전이 없었다.
시중은행들은 산별교섭으로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 8월말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했다. 시중은행들은 사용자협의회에서 탈퇴한 뒤 개별 노조와 협상을 벌여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중은행들은 노사간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 어려워지자 금융공기업처럼 이사회를 통해 의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내년 성과연봉제 시행을 결정한 이사회 의결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기업은행 노조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이 나온 다음에 이사회 의결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IBK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은 이사회 의결을 통해 올해 상반기에 모두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확대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과 상충하지 않는다며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으로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이다.
금융노조 각 지부는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건 무효라며 금융공기업들을 상대로 가처분신청 및 본안소송을 제기했다. 기업은행지부와 산업은행지부는 이미 본안소송 및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 냈으며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캠코 지부도 본안소송을 제기했다.
강구귀 기자 ni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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