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개 노란 만장 탄핵·세월호 메시지 담겨·시민 5000명 참가
-"탄핵 못 시키면 국회의원 밥값 못하는 것"
-경찰, 집시법 위반 방송으로 한 때 주최 측 해산 요구도
[아시아경제 이현주·금보령·기하영·문제원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는 촛불에 둘러 싸였다. 오후 7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빗줄기가 굵어졌음에도 시민들은 대토론회와 행진을 이어 갔다. 강한 바람까지 불어 체감 기온은 뚝 떨어졌지만 정부와 국회를 향한 촛불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5000명이 모였다.
◆500개 노란 만장, 국민 메시지 담아=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근(서울 개봉동·27)씨는 "정권에 대한 분노,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집회에 참여했다"며 "모두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여의도공원으로 왔다. 이곳에선 만장으로 국회를 에워싸는 국회포위만인행동의 '탄핵까지 국회 포위-천개의 만장, 만인의 바람' 행사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날 만장은 작가들의 손에서 시작해 자원봉사자들의 손에서 마무리됐다. 시민들이 보내준 메시지를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작가들이 받아 직접 손 글씨로 썼다. 천을 나무에 덧붙이는 일은 자원봉사자들이 도왔다. 작가들은 빳빳한 노란색 천 위에 페인트 등으로 '탄핵에 동참하라', '역사가 당신을 기억하리', '도대체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2014 0416', '국회는 밥값하라, 그 밥은 세금이다' 등을 썼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유순예(여·51) 시인은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지만 내일 꼭 탄핵을 해야 한다는 각오로 나왔다"면서 "내일 탄핵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것을 하늘이 지켜본다는 심정으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 댄서인 라온범(21)씨는 "사실 퇴진이 시작"이라며 "강남역 사건, 송파 세모녀, 노동개악 등 현재 우리 사회 모든 게 문제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박 대통령 퇴진부터 시작해야 하고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에서 온 주부 서모(여·47)씨는 "바다 속에서 아이들은 죽어 가는데 박근혜는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서 나왔다"며 "6시까지 만들고 국회 포위까지 하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여고 동창생들과 함께 참여했다.
여의도공원에서 만들어진 만장은 오후 7시 시민들의 손에 들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함께 국회로 행진했다.
퇴진행동은 오후 7시부터 '박근혜 즉각퇴진, 응답하라 국회 시국대토론회 1부'를 진행하며 오후 8시 국회를 둘러싸는 인간 띠 잇기, 시국대토론회 2부를 진행할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간 띠 잇기는 경찰들이 막아 실패했다.
◆朴 대통령 뽑은 것 후회=지난 대선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이재철(75)씨는 "대통령이 너무 못해서 배신감을 느껴 동참하러 나왔다"며 "탄핵 못 시키면 국회의원들 밥값 못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김지현(여·21)씨는 "내일 시험인데도 탄핵하는데 힘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왔다"면서 "세월호 7시간이 밝혀진 게 없어 마음이 아프고 고3 때 일어났던 일인데 동생들이 죽어서 당시엔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권이 거의 끝났는데도 밝혀진 게 없어서 화가 나고 탄핵 후 수사하면, 시민들이 이렇게 요구하면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모(23)씨는 "기말고사 끝나고 탄핵 가결을 위한 국회 압박을 위해 나왔다"며 "탄핵 가결 될 거라 믿지만, 부결되면 광화문 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즉각 퇴진, 응답하라 국회'=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을 박근혜 즉각 퇴진-응답하라 국회 1차 비상국민행동의 날로 정하고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세월호 유가족 박혜영(단원고 2학년3반 최윤민양 어머니)씨는 "그동안 기자회견이나 피켓시위 등을 해왔지만 지난 6차 집회 때 청와대 100m 앞까지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부모들끼리 많이 울었다"면서 "국가 존재가 뭔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지 않아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책임을 제대로 물었다면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라며 반문했다. 박씨는 "배가 왜 침몰했는지, 왜 아무도 구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소연하고 서명을 받아도 오히려 탄압받고 아이 팔아 돈 챙기는 패륜 부모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지금은 집회 나가면 유가족을 향해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이 많아 졌는데 지금처럼 거리로 나오셔서 행동하시고 같이 싸워주셔야 이 나라가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태연 중소상공인시국회의 대표는 "이번 국정농단은 박근혜와 최순실, 새누리당과 재벌들의 악질적 국가 범죄가 본질"이라며 "중소자영업자들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자신들이 죽는 이유도 모르고 시름시름 죽어갔다"고 말했다. 인 대표는 "재벌들의 시장 독점을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는다"면서 "야당 또한 재벌들의 늪에서 벗어나야 하며 박근혜 탄핵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경찰 "집시법 위반, 자리로 돌아가라"=한편, 이날 경찰은 주최 측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을 위반했다며 해산하라고 명령했다.
경찰은 이날 방송을 통해 "여러분이 거듭된 방송에도 계속해서 신고한 범위를 벗어났다"며 "신고 된 곳으로 돌아가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국회의사당 100m 앞까지는 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집회 및 행진 신고를 산업은행부터 국회 100m 앞까지 신청해뒀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찰 관계자는 "현재 집회가 열리는 지점이 국회로부터 100m 안 지점"이라며 "집시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100m 지점을 놓고 주최 측과 경찰 간 기준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인다. 주최 측은 현대카드·캐피털 본사 건물 까지가 국회 앞 100m로 보고 있는 반면 현장에 나온 경찰은 KB국민은행 가기 전까지를 100m로 보고 있다.
경찰의 거듭된 방송에 시민들은 야유를 하고 차벽을 치우라고 요구했다.
또 2차 대토론회 때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나와 시민들과 함께 나눈 자유발언도 진행됐다. 김제동씨는 "우리 여기 모여서 같이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에게 우리 뜻을 받들어라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비오는 날 외치는 우리 목소리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국회의원은, 새누리당은 좋은 말 할 때 국민의 뜻을 받들어라"라고 덧붙였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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