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일본 실천, 세탁기 부서 선택, 시그니처 브랜드 연착륙…고졸 최초 사장에 부회장까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탈(脫)일본을 결심했다. 일본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넘어서야 했다."
올해로 LG전자 입사 40년을 맞는 조성진 LG전자 대표이사는 '세탁기 신화'를 써내려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탈일본'을 필두로 고비마다 승부수를 띄웠고, 그렇게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조 사장은 1일 LG그룹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고졸 출신의 40년 월급쟁이가 입지전적인 길을 내디딘 것이다.
조 부회장의 드라마틱한 세탁기 도전은 '일본의 벽'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된다. 1989년 노사분규 이후 LG전자는 위기상황을 경험했다. 세탁기 등 핵심 사업의 시장점유율이 추락했다.
당시 세탁기연구실장이었던 그는 제품개발과 의사결정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일본 기술을 그대로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현실에서 "일본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발팀과 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시설을 만들어 놓고 밤샘 작업을 이어갔고, 1998년 마침내 'DD(Direct Drive)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LG 세탁기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배경이었다.
조 부회장의 인생을 바꿔놓은 또 다른 승부처는 40년 전, 금성사(현 LG전자)와 인연을 맺었던 197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 우수 장학생으로 설계전문 과정에 입사한 그는 당시 대세로 통하던 선풍기와 밥솥 대신에 세탁기 분야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LG전자 가전공장은 부산에 있었는데 부산과 경남 지역 공고 출신들이 알토란으로 통했던 제품(선풍기·밥솥 등) 부서를 다 차지하고, 남은 자리가 없었던 게 역으로 기회가 됐다. 조 부회장은 세탁기야말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했고, 40년 질긴 인연을 시작했다.
'집념'과 '도전'은 오늘의 조성진을 만든 계기였다. 지난해 말 초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를 둘러싼 업계의 우려에도 '시그니처'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었던 장면도 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다. 조 부회장은 시그니처를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연착륙시키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H&A사업본부의 초프리미엄 전략이 시장에서 통하면서 영업이익을 회복했다. 그는 올해 초 시무식에서 "차별적 지위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세상의 변화 속도와 경쟁 상황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면서 주도적 변화창출을 역설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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