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살며 생각하며]쓰시마,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낀 삶

시계아이콘02분 18초 소요

[살며 생각하며]쓰시마,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낀 삶 원철스님
AD

부산 아지매(아주머니)들이 마실 삼아(동네를 산책한다는 의미) 우동 먹으러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쓰시마(對馬島)는 가까웠다. 현재 3만의 일본주민이 살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때가 되면 거의 본섬으로 떠나기 때문에 고등교육기관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그런데 이즈음 일 년에 20만 이상의 한국인이 다녀간단다. 그 가운데 6할이 당일치기라고 했다. 필요한 면세품 한 개만 제대로 구입하면 왕복비용이 빠진다는 농담은 그만큼 거리가 가깝다는 뜻의 우회적 표현이리라.


[살며 생각하며]쓰시마,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낀 삶 살며 생각하며


그동안 쓰시마행을 기억으로 가만히 더듬어 보니 벌써 서너 번은 되는 것 같다. 어디로 가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여행계의 명언은 이번 나들이에도 어김없이 몇 번씩 반복해서 들었다. 식탁 위에 어떤 음식이 올라오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맞은 편 의자에 누가 앉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요리계의 명언도 빠질 수는 없다. 뒤집어 말하면 이런 말이 잦을수록 먹을 것과 볼거리가 별로 없는 여행지라는 의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또 올 일이 더 있을 터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고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소박할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정학적, 역사적 무게가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낀 틈새 국가로서 생존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는 절박함 그 자체였다. 섬의 90%가 산지이므로 의식주 등 모든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는 물자를 원조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반도도 열도도 모른 척했다. 양쪽에서 모두 버림받은 땅이었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했던가. 근대 이후 배를 만드는 조선술 및 운행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군사적, 교통적 요충지로서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반도와 열도에서 동시 구애를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래 전부터 두 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얼마나 잘하느냐 하는 것이 도주(島主)의 1차 정치능력 척도였다. 한일(韓日)의 경계인으로서 외교적 수사학의 극치기법을 임진란 때 보여줬다. 정명향도(征明嚮導:명나라를 정벌하고자 하니 안내를 해달라)에서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나라를 정벌하고자 하니 길을 빌려달라)로 바뀌더니 마지막에는 가도입명(假道入明 길을 빌려서 명나라로 들어가고자 한다)이란 문서까지 등장토록 만들었다. 마지막 ‘명나라에 들어간다’는 용어에는 전쟁이라는 의미까지 완전히 탈색시킨 것이다. 레토릭도 이 정도면 꾸미가 아니라 실력이다. 권력자의 전쟁의지까지 바꿀 순 없었지만 덕분에 문서를 수발하던 쓰시마 출신 외교사절의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임란 후에도 쓰시마가 살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과 국교를 재개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결국 조선통신사를 유치해 관계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쓰시마 세이잔지(西山寺·서산사)는 영빈관이었다. 이곳은 조선통신사 유숙처이기도 했다. 지금도 관광객과 참배객에게 숙방(宿坊·유스텔)을 제공하면서 자기만의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이테츠 겐소(景轍玄蘇,1537~1611)스님이 창건했다. 그는 1580년 쓰시마로 이주한 후 1611년 이 절을 지었다. 당시 절 이름은 이테이안(以酊庵·이정암)이었다. 정(酊)은 그가 태어난 정유(丁酉)년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만약 직접 이 이름을 붙였다면 자존감이 엄청 강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다. 사전적으로 정(酊)은 ‘술 취하다’라는 뜻이다. 제정신으로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묵는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든지 몽롱한(?)상태로 아주 편안한 휴식을 주겠다는 다짐이었을까?


어쨌거나 겐소 스님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선말을 할줄 안다’는 이유로 반강제적으로 경계인의 삶에 편입됐다. 사무라이(武士)시대에 개인 의사가 존중될 리 없었다. 복종과 죽음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임란 이전에는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첩자 노릇을 했고 임란 때는 종군해 참모 노릇을 했으며 종전 후에는 국교 재개를 위한 외교사절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임진란을 배경으로 하는 대하사극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 까닭에 우리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과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런저런 역할과 중재자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부정과 긍정이 극단으로 함께 존재한다. 조선과 일본이라는 진영논리의 충돌 속에서 두 국가를 객관적으로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중도주의자의 삶은 수시 변신을 강요당하는 고달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처해진 상황에 따라 중간자로서 경계인으로 최선을 다했다. 양국 사이에 끼여 고통받는 쓰시마인과 함께 아파하면서 고심한 까닭이다.


많은 한국인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정서와 생활방식을 배려하지 않는 막무가내식 관광 때문인지 곳곳에 기본예절을 갖춰 줄 것을 요구하는 한글 안내문이 걸려있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임란 직전에 세이잔지(西山寺)를 방문한 조선의 학봉 김성일(金誠一,1538~1593) 선생은 “한 집에서 의관을 갖춘 두 나라의 신하(一堂簪盖兩邦臣) 지역은 비록 다르지만 의식(儀式)은 비슷하구나.(區域雖殊義則均)”라는 시를 남겼다. 두 국가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경계지 여행’이 주는 의미를 좀 더 살릴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2009:48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전 세계에서 K푸드에 대한 수요가 식을 줄 모른다." 미국의 경제 뉴스 채널 CNB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 식품의 글로벌 확산세에 대해 이같이 조명했다. 이 방송은 특히 라면을 K푸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품목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K팝과 한국 드라마에서 라면이 자주 노출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물가 인상과 생활비 상승도 비교

  • 26.01.2007:16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7시 미국 뉴욕 맨해튼 32번가 K타운. 한국 치킨 브랜드 BBQ 매장은 '치맥'을 즐기려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테이블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저녁 시간을 즐겼다. 치킨뿐 아니라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한국 메뉴를 함께 주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메디슨 씨는 "학교 근처

  • 26.01.1915:08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K웨이브 글로벌 현장 점검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

  • 26.01.1914:08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처럼 금방 꺼질 수 있습니다. 지하수처럼 '일상 문화'가 계속 흐르도록 해야 K 브랜드와 산업의 생명력을 3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일열 전 파리문화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K브랜드의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콘텐츠는 강력한 진입로가 될 수 있지만, 휘발성이 크다"며 "어느 순간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썸

  • 26.01.1914:08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현지 한식당 대부분이 중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