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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연안으로/안태운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8초

연안으로 가 봅시다 연안으로 밀려오는 너를 보러 나는 연안으로 건너가 봅니다 너를 마주한 나를 만나러 연안으로 나를 흘러가 봅니다 네게 잠들기 직전이라고 말해 주러


그런 내게 너는 물을 밀고 땅을 밀었다고 합니다 밀다가 놓쳤다고 합니다 밀려오는 중에 갈 곳을 잃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네게 사이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멀어져서

너무 멀어져 버렸다고 그러니 나를 흘러가라고 합니다 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러나 내가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오후 한詩]연안으로/안태운 연안으로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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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흘러갑니다. 당신에게로 흘러갑니다. 당신을 만나러 흘러갑니다. 저를 밀고 밀어 당신에게로 갑니다. 연안으로 갑니다. 땅이 끝나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 가면 당신이 그리고 당신을 마주하고 선 제가 있을 듯해서입니다. 그런 마음 하나로 갑니다. 저는 제가 해지는 줄도 닳는 줄도 모르고 갑니다. 저는 저를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그저 당신에게 가고 싶어서 저는 저를 "밀다가 놓쳤"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으니까 저는 저 멀리 떠내려가는 저를 두고 다시 갑니다. 이렇게 가고 가다 보면 당신과 저와의 "사이"는 사라질지도 모르겠지요. 그런 믿음 하나로 갑니다. 가고 갑니다. 당신에게로. 그러나 마침내 마주한 당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너무 멀어져 버렸다고 그러니 나를 흘러가라고", "내가 잠들어 있다고". 몰랐습니다. 정녕 몰랐습니다. 당신에게로 가고 갔는데, 실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만 "나를 흘러가"고 있었던 건지도.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제야 문득 조금 알겠습니다. 저는 저를 놓치고 당신을 지나쳐 "나를 흘러"왔을 뿐입니다. 저는 당신에게도 제게도 결코 다다르지 못할 것입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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