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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관계, 문제적 사랑…연극 '미스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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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오늘 백성희장민호극장서 개막

금단의 관계, 문제적 사랑…연극 '미스 줄리' 연극 '미스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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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줄리는 내려가고 싶다. "가끔 꾸는 꿈이야. 내가 기둥 위에 올라가 앉았는데, 내려갈 길이 없어. 아래를 보면 아찔하고, 내려는 가야겠는데, 뛸 용기는 없고, 그래도 거기 머물 수는 없어. 떨어지길 바라지만, 그것도 안돼. 하지만 난 알지. 내려가야 평화가 있다는 걸. 땅으로 내려가야 휴식이 있다는 걸."

장은 올라가고 싶다. "전 어두운 숲 속, 높은 나무 밑에 누워있는 꿈을 꿉니다. 꼭대기로 기어올라, 햇빛 찬란한 경치를 보고, 황금알이 담긴 새집을 훔쳐보고 싶어요. 그래서 자꾸 기어오릅니다. 하지만 나무는 너무 굵고, 미끄럽고, 첫 번째 가지는 너무 높습니다. 그것만 잡으면, 사다리처럼 쉬울 텐데."


줄리는 백작의 딸이고, 장은 하인이다. 줄리는 하강을, 장은 상승을 꿈꾼다. 줄리는 자신의 구두에 입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장은 마지못해 명령에 따른다. 견고했던 이 둘의 관계는 하룻밤 육체적 관계로 역전된다. 신분계급은 줄리가, 성적 계급은 장이 높다. 장은 동경하던 여인을 손쉽게 정복한 남자처럼 줄리를 함부로 대한다. 줄리는 명령을 내리면 복종하겠다고 장에게 매달린다. 줄리는 자신의 여성성을, 장은 자신의 계급을 벗어던지고 싶어한다. 둘은 혼란 속에서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인다. 이상과 현실, 계급과 성별, 선과 악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면서 작품은 서서히 비극으로 치닫는다.

스웨덴 출신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1849~1912)는 1888년 희곡 '미스 줄리'를 발표했다. 스트린드베리는 당시 한 여류작가가 면도칼로 목을 긋고 자살한 사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성장배경에서 '미스 줄리'와의 교집합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스트린드베리의 아버지는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하녀였다. '하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 출신 배우와 결혼했지만 순탄치 못했다. 대를 이어 신분과 계급을 넘어선 사랑을 했던 자전적 경험이 '미스 줄리'에도 녹아 들어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가난과 방치"의 유년시절을 보낸 스트린드베리는 늘 결핍된 사랑에 목말라했다.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여인 속에서 천사를 구하다가 결국은 지옥을 발견했다'는 그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스 줄리'의 주인공 줄리는 연극 역사상 손에 꼽히는 여성 캐릭터다. 강인해보이다가도 한없이 약하고, 도발적이면서도 머뭇거린다. 스트린드베리가 줄리를 '반(半)여성'이라고 소개했듯이, 줄리는 사회의 관습에 대항해 자신을 남성과 평등한 주체로 여긴다. 전통적인 성 역할을 전복한 이 캐릭터의 등장은 스웨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게다가 신분차이를 넘어선 정사 장면은 당시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다. 결국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미스 줄리'는 스웨덴에서 16년간 상영 금지됐다. 후에 '미스 줄리'는 전세계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무대에 올려지는 현대 연극의 대표작이 됐다. 스트린드베리는 앞서도 스웨덴 사회를 낱낱이 풍자한 소설 '새로운 왕국'을 발표해 고국을 떠나게 됐고, 소설집 '결혼'은 신성모독을 이유로 고발당했다. 그로부터 '전쟁상인'이란 비난을 받은 노벨이 "스트린드베리 같은 작가는 수상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하는 바람에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노벨상도 받지 못했다.


금단의 관계, 문제적 사랑…연극 '미스 줄리' 펠릭스 알렉사 연출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펠릭스 알렉사(49)는 '미스 줄리'에 대해 "주제뿐만 아니라 대사마다 시적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는 매우 현대적인 연극"이며 "스트린드베리의 시대에 이 작품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이유로 여전히 충격적이고, 강렬하고 감정적인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다"고 했다. 25일 공연을 앞두고 진행된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장과 줄리 사이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 둘의 관계는 강한 성적 끌림에서 시작해 육체관계를 통해 클라이맥스에 오르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일종의 사랑-고문의 관계로 극적으로 변화하는 등 예측이 불가능하다. 전반부에서 줄리는 지속적으로 장을 도발한다. 그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한 시간 내에 극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지 못한다. 결국 줄리는 곧 죽을 것을 기다리는, 새장에 갇힌 작은 새 한마리가 된다."


펠릭스 알렉사는 학창시절이었던 30년 전에 처음 이 작품을 접하고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극에 담겨있는 깊은 폭력성이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연출가가 된 이후에는 2012년 3월 루마니아에서 성공적으로 초연 무대를 가졌고, 프랑스와 영국 투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 와서 국립극단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지금은 "공연을 할수록 더 복잡한 작품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줄리와 장의 하룻밤 일탈이 벌어지는 스웨덴 하지절의 묘한 분위기도 무대에서 담아낼 계획이다. 알렉사는 "'미스 줄리'는 나에게 전혀 현실적인 연극이 아니다. 스트린드베리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좀 더 시적이고 색다르다"며 "주인공들의 강렬한 감정과 함께 하지절 밤의 특별한 분위기가 갖는 시각적 효과에 집중했다"고 했다.


주인공 '줄리'역은 황선화(33), '장'은 윤정섭(34), '장'의 연인이자 '줄리'의 집 요리사 '크리스틴'은 김정은(45)이 연기한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줄리' 역은 연극학도들이 누구나 탐내는 역할이다. 국내에서도 '미스 줄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시험의 지정희곡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알렉사는 "'줄리'는 여배우가 연기하기에 정말 멋진 배역"이라며 "황선화 배우와 작업할 때, 그녀의 예민함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디테일들을 표현할 것을 제안했고, 각 대사마다 숨은 의미를 찾는 작업에 집중했다. '줄리'처럼 이상한 성격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황 배우를 극한의 감정으로 몰아붙여야 했다"고 말했다. '미스 줄리'는 25일부터 12월18일까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른다. 알렉사는 "이번 공연에서 실제 음식과 음식냄새가 있는 부엌을 배경으로 사용했다.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2시간도 되지 않는,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한 이벤트의 목격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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