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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화폐개혁]'검은돈' 잡으려다 서민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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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지하경제 화폐개혁 역풍…신권 부족 탓에 물류대란, 기업실적 회복 악영향

[인도 화폐개혁]'검은돈' 잡으려다 서민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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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검은 돈' 근절 차원에서 기존 500루피(약 8600원), 1000루피 고액권 지폐 유통을 중단시키고 신권으로 교체하는 화폐개혁에 나선 지 열흘이 넘었으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난 8일 오후 8시 30분(현지시간) TV로 생방송된 대국민 담화에서 현행 500ㆍ1000루피 지폐를 9일 0시부터 사용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갖고 있는 500ㆍ1000루피 지폐는 연말까지 은행과 우체국에서 신권으로 교환하도록 당부했다. 이들 지폐는 현재 통용 중인 전체 화폐의 86%를 차지한다.


인도 정부는 은행에 대한 신권 공급량을 늘리고 1인당 현금 인출 한도를 높인데다 국영 병원과 주유소 같은 데서는 24일까지 기존 지폐를 받아주는 등 보완책도 내놓았다. 그러나 신권 공급량이 여전히 수요량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500ㆍ2000루피 신권과 유통 가능한 100루피 이하 소액권을 구하려는 인파는 여전히 은행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신권 교환에 서너 시간 이상 걸리다 보니 근무 시간을 피해 아예 은행 앞에서 밤 새우는 이들도 있다.


[인도 화폐개혁]'검은돈' 잡으려다 서민 잡겠네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 다드리의 어느 은행에서 한 주민이 구권과 교환한 2000루피짜리 신권 지폐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사진=블룸버그뉴스).


◆공군기 비상 대기=공군 제트기들이 외지 곳곳까지 신권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인도중앙은행(RBI) 측은 "비상시, 안보상 이유, 민간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 등 규정에 따라 공군기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RBI 조폐창에서 찍은 돈은 대개 특수 제작된 트럭에 실려 무장 요원이 동승한 가운데 인도 곳곳의 4000개 금고와 은행 지점들로 운송된다. 이번 조치 이후 발행된 신권은 돈이 모자라는 지역부터 헬기로 수송해야 했다.


◆물류대란=전(全)인도차량운송노동조합(AIMTC)에 등재된 트럭 930만대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액권 회수 조치로 멈춰 서고 말았다.


AIMTC의 나빈 굽타 사무총장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현금이 떨어진 트럭 운전기사가 트럭을 버리고 신권부터 구하러 다니기 일쑤"라며 "신권이 없어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들다"고 발끈했다. 인도의 화물 가운데 65%는 육로로 운송된다.


◆날개 돋친 금괴=현지인들이 대개 현금으로 구매하는 금괴가 구권 사용 금지 조치 당일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구권을 환금성 좋은 금으로 바꿔 보유하려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뭄바이의 일부 귀금속상은 자정이 넘도록 문을 닫지 않았다. 손님을 돌려보내는 귀금속상도 있었다.


이날 고객은 금 10g당 5만2000루피를 지불했다. 금값이 거의 두 배로 뛴 셈이다. 세계금위원회(WGC)는 이처럼 금값이 오른데다 인도 정부가 구매의 투명성, 수입 공개 원칙을 강화해 올해 금 수요가 7년만의 최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 화폐개혁]'검은돈' 잡으려다 서민 잡겠네 한 기업체 직원이 구권과 교환한 2000루피짜리 신권 지폐가 가득한 철가방을 들고 은행 밖으로 나서고 있다(사진=블룸버그뉴스).


◆명품도 불티=현금 부자들은 다량의 고액권 탓에 자산 규모가 고스란히 드러날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이들은 현금 규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구권 사용이 허용된 8일 늦은 밤까지 환금성 좋은 명품 구매에 열 올렸다.


어느 명품 시계 매장은 고객에게서 받은 500ㆍ1000루피 다발들을 금고에 넣다 못해 수북이 쌓아놓고 있었다. 오후 10시 정도면 쇼핑몰 상가 대다수가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날 카르티에ㆍ롤렉스ㆍ오메가 등 고급 시계 매장과 버버리 같은 고가 의류 매장, 귀금속 매장은 자정이 지나서도 계속 영업했다.


◆은퇴 은행원들 복귀=국영 은행들은 신권으로 교환해줄 인력이 모자라자 은퇴한 전 직원들을 불러들였다. 이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한다. 정부는 은행들에 이들에게 교통편과 음식을 제공해달라고 당부했다.


◆규격이 다른 현금자동인출기(ATM)=인도의 ATM 가운데 66%나 공급한 미국 조지아주 덜루스 소재 NCR에 따르면 인도 ATM 22만대의 현금 입출금구 사이즈를 바꿔야 한다. 500ㆍ2000루피 신권 크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입출금구 사이즈 변경에는 한 달이 소요될 듯하다.


◆헌금함 공개=종교단체들은 헌금함을 속속 공개하고 있다. 신권이 부족해 일상 생활조차 힘든 이들에게 가져가도 좋다며 내놓는 것이다. 은행은 종교단체들과 접촉해 받은 헌금을 그때그때 입금시켜달라고 당부했다. 모자라는 신권을 속히 유통시키기 위해서다.


◆기업실적 회복에 악재=투자자들은 모디 총리의 신권 교체 조치가 기업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느라 바쁘다. 지난해 내내 감소한 인도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올해 세 분기 내내 증가했다. 아룬 자이틀레이 인도 재무장관은 이번 조치 이후 "단기적으로 소비가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뭄바이 소재 코탁마힌드라자산운용의 닐레시 샤 최고경영자(CEO)는 "유동성 부족으로 소비산업이 타격 받아 기업실적 회복은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번 조치로 소규모 소비와 기초 생활비 외의 지출이 잠시 주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7% 이상의 경제성장률, 130억달러(약 15조3000억원) 상당의 공무원 임금 인상분, 2년 가뭄 끝에 올해 많이 내린 비 등으로 투자자들은 기업실적 개선이 가속화하리라 판단하고 투자했다.


[인도 화폐개혁]'검은돈' 잡으려다 서민 잡겠네 트럭 차고에 운행을 중단한 트럭들이 늘어서 있다(사진=블룸버그뉴스).


지난달만 해도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17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에 인도의 기업실적 증가율이 인근 국가들 기업보다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고액권 화폐 유통 중단 조치로 통화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장밋빛 전망은 빛이 바래고 말았다.


영국 금융그룹 HSBC는 최근 보고서에서 통화개혁 조치 이후 12개월 사이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이 최고 1%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도이체방크의 아브하이 라이자왈라와 아브히셰크 사라프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낳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을 야기해 몇몇 경제활동이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조치로 특히 부동산 개발, 시멘트 생산, 인프라 건설에 타격이 생길 듯하다.


모디 총리는 '검은 돈 근절'이라는 공약을 완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도 정부는 '베나미' 부동산 등 조세회피 수단을 단속하기 위해 추가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나미란 특정인이 제3자 명의로 보유한 부동산을 뜻한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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