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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비선실세의 농간이 부른 참극, '토목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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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비선실세의 농간이 부른 참극, '토목의 변' 토목보 전경(사진=중국신장자치구인민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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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북서쪽으로 100km 정도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토목보(土木堡) 유적지. 현재는 거의 폐허만 남아있지만 명나라 때까지는 만리장성에 부속된 여러 요새 중 하나였다. 이 유적이 다른 요새들보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인 '토목의 변(土木之變)'이 일어났던 현장이기 때문이다.

토목의 변은 중국 명나라 영종 정통제 때인 서기 1449년 일어난 몽골 오이라트 부와의 전쟁을 의미한다. 이 토목보에서 명군 50만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황제가 포로로 잡히기까지 하는 등 중국사의 가장 치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돼있다. 그리고 이 치욕적 패배의 주 요인은 황제의 측근이자 당대 비선실세로 전횡을 떨친 환관 왕진(王振)이라는 인물에게 있다.


왕진은 원래 과거공부를 준비하던 평범한 취업준비생 출신으로 계속해서 과거를 낙방하자 출세를 위해 환관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궁형을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당시 환관들 중에 글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어서 태자의 시중을 들며 글공부를 가르치도록 명을 받았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비선실세의 농간이 부른 참극, '토목의 변' 중국 명나라 영종 정통제 초상(사진=위키백과)


그는 언변이 유창하고 태자의 비위를 아주 잘 맞춰 태자의 최측근이 됐고 이 태자가 정통제로 즉위하자 조정의 실세로 떠올랐다. 이후 왕진은 각종 청탁 비리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며 전횡을 했지만 황제의 비선실세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문제는 왕진이 외교문제에 손을 대면서 시작됐다. 당시 명나라는 몽골의 오이라트 부족과 국경지대에 마시(馬市)를 열고 몽골말을 대거 사들였으며 이것은 오이라트 부족의 주 수입원이었다. 이 마시에서는 명나라가 말값을 시가보다 더 비싸게 사주는 것이 외교 관례였으며 이를 통해 몽골주민들은 생존을 보장받고 양국의 긴장관계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정축재에 눈이 먼 왕진은 국가예산이 이렇게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말값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사사로운 말 무역을 일체 금지시키고 오이라트 부족에게도 시가에 딱 맞춰 말값을 지불한 뒤 사신들을 모두 내쫓았다. 마시 수입이 반토막이 나자 오이라트 부족의 지도자인 에센 칸은 대노했고 20만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로 쳐들어왔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비선실세의 농간이 부른 참극, '토목의 변' 몽골기병(사진=영화 몽골 캡쳐)


전쟁이 발발하자 왕진은 책임 회피를 위해 황제를 움직여 친정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부분의 장수들과 대신들이 반대한다. 막강한 몽골기병과 전면전을 벌이기보다는 만리장성의 주요 요새를 단단히 지켜야한다고 했지만 왕진의 억지에 정통제는 50만 대군을 이끌고 베이징을 떠났다. 야전에서 몽골 기병과 싸움이 되지 않는 명군의 선봉부대는 패배했고 이에 출전한 장수들의 권고에 따라 퇴각이 결정됐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명군이 대패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왕진은 또 한번 농간을 부린다. 명군이 빠른 속도로 회군하려면 자신의 고향을 지나쳐야하고 그렇게 되면 자기 고향이 50만 대군을 먹여살리다가 황폐하게 된다며 그 길을 피해 돌아가는 길로 행군방향을 바꿔버렸다. 결국 먼 길을 돌아가던 명군은 토목보에서 빠르게 추격해온 몽골 기병대와 만나 전멸되고 황제는 포로로 잡혔고 왕진은 목숨을 잃었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비선실세의 농간이 부른 참극, '토목의 변' 토목의 변 진행도(사진=중국상하오천년사)


한편 베이징에서 이 소식을 전달받은 명나라 조정은 대혼란에 빠진다. 수도를 난징(南京)으로 천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시 병부시랑인 우겸(于謙)이란 자가 나서서 수도를 사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우겸은 "수도는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을 버리고 어찌 살길 바라는가? 북송이 어찌 망했는지 모르는가?"라고 일갈하며 베이징 성문을 걸어 잠그고 결사대를 모아 방어태세를 굳혔다.


우겸은 중국 역사에 탁월한 전시 내각의 수장으로 기록돼있다. 그는 일단 포로로 잡힌 황제를 대신해 황제의 동생을 새 황제인 경태제로 등극시켜 비상 내각을 수립하고 방어병력을 지휘해 오이라트 군대를 물리치고 베이징을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전란이 끝난 후 여기저기서 일어난 반란도 수습해 명나라 멸망을 막아낸 1등공신이 됐다.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비선실세의 농간이 부른 참극, '토목의 변' 우겸 초상(사진=베이징관광발전위원회)


하지만 이후 전쟁에 패한 오이라트 부족이 정통제를 송환시켰고 정통제가 경태제를 밀어내고 다시 복위되면서 우겸은 대역죄로 처형된다. 정통제는 우겸의 재산을 몰수했으나 값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고 곳간에는 조정에서 받은 예복과 무기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통제는 우겸의 처형을 크게 후회했고 이후 우겸을 복권시켰다고 한다.


이후 우겸의 행동을 두고 후대에 논쟁이 계속됐다. 신하된 입장에서 황제를 구명하기 전에 새 황제를 옹립한 행동을 두고 불충이라는 것. 그러나 국가 비상상황에서 재빨리 새 황제를 세우고 내각을 안정시키지 않았다면 나라 자체가 멸망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만고의 충신으로 기록됐다. 우겸에게는 훗날 충숙(忠肅)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우겸의 결단은 국정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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