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작품으로 3년 6개월만에 무대 복귀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지휘자 구자범(46·사진)씨가 3년 6개월 만에 무대에 복귀한다. 그가 오랜만에 지휘봉을 잡은 작품은 셰익스피어 원작을 주세페 베르디가 동명의 오페라로 옮긴 '맥베드'다. 구자범 씨는 "이 작품이 현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했다.
구자범씨는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작품설명회에서 "이건웅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처음 맥베드를 제안했을 때는 생각해보겠다고만 했다"며 "이 작품을 잘 몰랐는데, 셰익스피어를 다시 보면서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권력, 암살 등을 묘사한 부분이 현실과 비슷했다"고 했다.
맥베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용맹한 장군이자 야심가인 맥베드가 마녀의 사주를 받아 자신이 섬기는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내용이다. 구씨는 "마녀들이 '나한테 잘못한 놈이 있어서 배를 침몰시킬 거야', '그럼 내가 암초를 빌려줄게'하며 합창하는데 마치 권력과 탐욕에 눈먼 이들로 보였다"며 "또 맥베드 부인이 맥베드에게 '지도자가 될 수 있어'라고 속삭이며 조종하는 부분에서도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이 담겼다"고 했다.
그는 "작품에서는 탐욕과 야심에 눈이 먼 맥베드 부부가 왕을 죽여 놓고는 태연하게 '신이시여, 암살자를 처단해 달라'고 가증스럽게 말하는 장면도 있다"며 "베르디는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합창단을 등장시킨다. 결국 '권력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민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닐까"라고 했다.
구자범 씨는 국내 데뷔 전 유럽 무대에서 오페라 지휘자로 활동했으나 국내 무대에서는 주로 교향곡을 지휘해 왔다. 2011년부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다가 2013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오페라는 그가 3년 6개월 만에 다시 맡은 무대다. 그는 "3년 전에는 정말 못할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다"고 짧게 말했다.
연출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변강쇠 점찍고 옹녀', '칼로 막베스', '푸르른 날에' 등을 선보인 고선웅(48) 씨가 맡았다. 오페라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구자범 지휘자가 작품을 워낙 탁월하게 분석하기 때문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며 "작품을 어떻게 하면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배우들의 연기동선도 어떻게 해야 자유롭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맥베드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예술감독은 "탐욕이 미덕이 된 이 시대에 맥베드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쓰면서 통렬하게 우리에게 한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작품은 오는 24~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맥베드 역은 바리톤 양준모와 김태현, 맥베드 부인 역은 소프라노 오미선과 정주희가 맡았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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