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60·개명 후 최서원)씨가 의혹이 불거진 후 사실상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얼굴을 감췄다.
국정농단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31일 오후 최씨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59분께 모자,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초동 검찰청사에 나온 최씨는 현장을 둘러싼 취재진 등 300여 인파에 떠밀리듯 청사 내부로 들어갔다. 현장을 찾은 시민단체 회원들은 “최순실 구속, 박근혜 하야”를 연호했고, 최씨는 포토라인과 더불어 자세가 무너진 채 쫓기듯 청사 내부로 진입했다. 검찰은 돌발상황에 대비해 9명여 직원을 내보냈으나 소용없었다.
함성소리에 육성을 알아듣기 힘든 상황에서 그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조사실로 향했다. 검찰 관계자는 출석 상황을 두고 “국민 알 권리를 위해 포토라인을 설정했음에도 일부 시위대의 기습적이고 무질서한 행동에 의해 포토라인이 무너진 것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실소유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유출·누설 상대방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이다. 하루 전만 해도 “정신적 충격으로 건강이 매우 나빠 (독일에서)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던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일제히 사표를 내던 29일 밤 돌연 영국 런던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정입학·출결특혜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딸 정유라씨는 국외에 놔둔 채다.
전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 31시간여 만에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며 검찰 안팎에선 증거인멸 기회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최씨 변호를 맡은 이경재 법무법인 동북아 대표변호사는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변호인으로서 조력하겠다”며 “증거인멸 여지없고, 증거 인멸할 부분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씨는 현재 횡령과 탈세,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10여개 안팎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선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설립 의혹 등에 먼저 집중한 뒤 국정농단 등으로 수사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검찰은 각종 의혹의 ‘몸통’인 최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죄혐의가 입증되면 곧장 긴급체포 등을 통해 신병을 확보한 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을 줄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두 재단 설립 및 재계를 상대로 한 강제모금 의혹에 연루된 안 전 수석, 국정문건 유출·누설 통로로 지목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은 출국금지 조치했다.
앞서 검찰은 최씨 측근 고영태 더블루케이 이사(40),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45)을 비롯한 두 재단 및 개인회사 관계자 조사, 200여건의 청와대 문건이 담긴 태블릿 PC 등을 통해 각종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
특별수사본부는 디지털증거 관련 수사 경험이 풍부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산하 첨단범죄수사1부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태블릿PC와 청와대 압수물 분석 결과가 국정농단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핵심 단서이기 때문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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