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나합'스토리 - 그의 아버지는, 당대 권력집안 셋째 아들을 노리라고 딸에게 귀띔하는데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당시 도성 내에는 주막이 크게 번성했다.
18세기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의 말을 들어보자.
“비록 수십 년 전의 일을 말하더라도, 매주가(賣酒家)의 술안주는 김치와 자반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백성의 습속이 점차 교묘해지면서, 신기한 술 이름을 내기에 힘써 현방(懸房)의 쇠고기나 시전(市廛)의 생선을 따질 것도 없이 태반이 술안주로 들어갑니다. 진수성찬과 맛있는 탕(妙湯)이 술단지 사이에 어지러이 널려 있으니, 시정의 연소한 사람들이 그리 술을 좋아하지 않아도 오로지 안주를 탐하느라 삼삼오오 어울려 술을 사서 마십니다. 이 때문에 빚을 지고 신세를 망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시전의 찬물(饌物) 값이 날이 갈수록 뛰어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당시 서울의 쌀과 저자(시장)의 어육(魚肉)이 모두 술집에 들어가니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는 건의가 잇따랐지만 술집은 줄지 않았다. 이런 주막붐을 타고 지홍이의 나주헌은 금방 소문이 났다.
영산강에서 올라온 일품 홍어요리에다 천하일색의 기녀(妓女)가 춤과 거문고로 술맛을 드높이니, 황진이의 풍류(風流)가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사내들이 줄을 서는 '강남 텐프로'였다.
그 무렵 아버지 양씨가 딸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부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거라. 비록 술 따르는 처지일망정 품행이 반듯하면 귀하게 될 수 있다. 내 듣자 하니 상의원 첨정(僉正)에 있는 하옥(荷屋) 어른이 안동김문의 큰 그릇이라는구나. 우연히 이곳에 한번 오게 되면 네가 그 기회를 붙잡아 보아라.”
“중전(순조의 비, 순원왕후)의 오빠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 분은 어떤 분인가요?”
“옛날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 선생의 5대손이고, 영안부원군 김조순 어른의 셋째 자제분이다. 권세를 잡은 안동김문이 대개 정적(政敵)에게는 가혹하다지만 지인이나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러워 바닥 인심은 잃지 않았다. 특히 하옥 어른은 성정이 너그럽고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는구나.”
지홍은 뜨락의 연못에 연꽃을 가득 심어, 연꽃못(荷屋)을 만들었다. 이렇게 부녀는 타겟을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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