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에 몸이 곤욕스럽다. 환절기성 질환이 계절의 변화가 급격할 때마다 나타난다. 안구가 뻑뻑하고 눈이 살짝 붓고 가렵다. 코도 간지럽고 재채기가 수시로 난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그 얄미운 놈의 이름이다.
인간은 항상 어떤 기온에서도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면서 몸을 적응시킬 수 있는 항온동물, 즉 '포유류'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요즘처럼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몰아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이럴 땐 인간의 몸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급할 땐 보약도 먹고 더 못 참겠으면 대증요법이나 양약의 도움이라도 받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환절기엔 반신욕을 추천한다. 따뜻한 물에 반쯤 몸을 담구고 반신욕을 하면서 땀을 빼면 한결 낫다. 의사들도 반신욕이 몸의 자발적 치유력·면역력을 향상시켜 심지어 항암력을 높여준다며 강력 추천한다.
인간의 정신도 육체와 마찬가지다. 거센 심리적 충격·스트레스가 연이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이라는 정신적 방어기제가 작용하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이 몰아치거나 강도가 센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인간의 마음은 어김없이 병고에 시달린다. 심리학적인 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를 없애려면 '심리적 반신욕'이 필요하다.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이겨낼 수 있도록, 잊을 수 있도록 그대로 놔두고 도와 줄 것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 이게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잊어야 사는 사람들, 잊기 위해 치를 떠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아직도 안 잊었냐"고 괴롭힌다. 개인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그렇다.
도대체 왜 일까?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를 '트라우마의 대물림' 현상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일제 식민 지배, 한국전쟁, 군사 독재, 그 밖에 삼풍백화점 붕괴·대구지하철 참사·세월호 참사 등 수많은 사회적·역사적 상처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트라우마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잠재 의식 속에 '대를 이은' 트라우마가 숨쉬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심리적 상처에 급하게 흥분하고 또 급하게 좌절한다. 한국인 특유의 '냄비 기질'이 난무한다. 남의 아픔에 쉽게 무감각해진다.
격하게 동감한다. 과제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는, 시스템화하고 정교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장 절실한 것은 치유의 리더십이다. 갈등·배제·독선의 리더십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민중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달래주고 치유해주는 리더십이 간절한 때다. 성장이냐 분배냐, 경제민주화냐 복지냐, 햇볕정책이냐 안보냐 말도 많다. 그러나 한국인들 모두에게 따뜻한 반신욕 같은 정치를 제공할 수 있는 치유의 리더십이라면 누구라도 환영이다.
김봉수 사회부 차장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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