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는 온오프라인 통합 10주년을 맞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국력 제고를 위해 뛰는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산업통상자원부, KOTRA, 무역보험공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중국 대(大)기획 시리즈 '우문현답, 다시 뛰는 산업역군'을 통해 드넓은 중국 대륙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산업역군의 치열한 삶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뉴아시아-우문현답, 다시 뛰는 산업역군<8>아모레퍼시픽 상하이 뷰티사업장
90년대 초반 서경배 당시 기조실장 "지금 들어가도 빠르지 않다" 中 진출 진두지휘
마몽드·에뛰드 아모레퍼시픽 'K뷰티 전초기지'…年 1억개 생산력 자랑
선양공장·상하이 R&I센터 한데 집결
원재료 입고부터 포장까지 자동화로
공조기 21대 씽씽…법규 이상 청정 구역 유지
지역 물류 센터 연계, 중국 땅서 3~4일이면 제품 손에
올해 中 법인 매출 1조원 첫 돌파할 듯
[상하이(중국)=아시아경제 김혜원 특파원] 2002년 9월28일은 아모레퍼시픽이 '라네즈' 브랜드를 처음으로 중국 상하이 소재 한 백화점에 입점한 역사적인 날이다. 2층 구석의 아주 작은 매장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로부터 꼬박 14년이 흐른 지금 라네즈는 상하이 최고급 백화점을 비롯해 중국 전역 360여개 백화점 1층에 당당히 입점해 있다. 2013년부터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리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2005년 중국에 처음 선보인 '마몽드'는 현재 800여개 백화점과 1920여개 전문점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라네즈와 함께 아모레퍼시픽을 중국인에게 각인시킨 효자 브랜드로 떠올랐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시장 진출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중국을 드나들다 선양을 최적의 입지로 택하면서 "지금 (중국에) 들어가도 결코 빠르지 않다"며 진출을 서둘렀다. 새 공장을 지으려면 시간이 더 지체할 것을 우려한 서 회장은 이미 지어진 건물을 찾아 1993년 선양 법인을 세웠다. 둥베이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는 글로벌 브랜드가 단 한 개도 없었을 때라 불과 3년 후 이익을 내기 시작했고 업계 1위에 올랐다. 중국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생산량이 적어 벌이는 시원찮았다. 이때부터 선양에서 경제 수도 상하이로 거점 이동을 고민했고 2000년에 최종 투자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지난달 7일 찾은 상하이 뷰티사업장은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진출 '완결판'이다. 상하이 도심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자딩(嘉定)구 마루(馬陸)진에 위치한 뷰티사업장은 기존의 선양 공장과 상하이 연구혁신(R&I) 센터를 한데 모아 2014년 10월 준공했다. 4㎞ 떨어진 곳에 있었던 기존 상하이 공장도 통폐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껏 단장한 예쁜 건물에 공장이 맞나 싶은 착각이 든다. 김근덕 혁신팀장은 "뷰티 산업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공장 같지 않은 공장, 아름다운 공장을 지향했다"고 소개했다. 축구장 12배 크기의 부지에 들어선 뷰티사업장은 총 4층으로 이뤄진 수직 공간으로 1·2층에는 생산동과 포장재·물류 창고, 3층에는 옥상쉼터 등 복지 공간, 4층에는 연구소와 사무실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쾌적한 근무 환경 덕분인지 제조 공장에 비해 직원들의 표정이 대체로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김 팀장은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GMP) 등급별로 공간을 구분해 출입이나 위생 복장을 차별화하고 있다"며 "또 생산과 관리 시설 간 유기적인 연계와 소통이 가능하도록 신경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마몽드와 '이니스프리' '에뛰드' 제품을 직접 생산한다. '설화수' '아이오페' '려' 등 다른 제품은 한국에서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생산 시설은 원재료 입고에서부터 포장까지 자동화돼 있어 사람의 손을 거칠 일이 많지 않다. 원료가 들어오면 제조 처방을 내리고 계량하는 공정에 이어 처방 원료를 제조 탱크에서 화장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어 화장품을 용기에 주입하는 필링과 외장재 포장 공정을 지나면 물류 센터로 자동 입고되는 시스템이다. 김 팀장은 "한국의 오산 뷰티사업장과 동일한 기준으로 최상의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며 "공기조화기 21대를 쉴 새 없이 돌리면서 평균 법규 이상의 청정 구역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애초 상하이 뷰티사업장은 단계별 증설을 통해 본품 기준 연간 1억개(중량 1만3000t)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셀(cell) 방식은 물론 중국시장의 급변하는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대량 생산 방식을 모두 고려한 공장이다. 김 팀장은 "현재 설비로는 연간 3800만개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향후 권역별 수요를 살피면서 순차적으로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2019년 설비 증설을 통해 매출 기준 1조9000억원의 생산 능력을, 2020년에는 여유 부지 증축 등을 기반으로 2조8000억원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올해 상하이 뷰티사업장의 생산 목표는 2300만개로 잡았다. 매출로는 1조원 상당이다. 지난해 1500만개에서 무려 800만개 더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본 셈이다. 정경수 공장장은 "1~6월 누적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했다"며 "2013년만 해도 연간 생산량이 1000만개였는데 2~3년 새 두 배 이상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2011년 2000억원에 못 미쳤던 중국 법인 매출은 올해 1조원대를 처음으로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이곳 물류 센터에서는 중국 전 지역 거래처에서 발생한 주문 작업 처리와 배송을 전담한다. 기존에는 물류 배송에 7일 이상 걸렸지만 상하이를 거점으로 선양과 청두에 있는 지역 물류 센터와 연계한 이후 평균 3~4일이면 중국 곳곳에서 제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경수 상하이 뷰티사업장 공장장 인터뷰 "화장품은 문화 산업입니다"
"화장품은 문화 산업입니다. 국가 브랜드가 중요하죠."
정경수 아이모리화장품(상하이)유한공사 총경리(공장장)의 말이다. 아이모리화장품은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사명이다. 정 공장장은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한결 같이 공장 곁을 지켰다. 중국에 온 지도 올해로 23년째다. 옆에 있던 한 직원은 그를 '아모레퍼시픽 중국 진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화장품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기술력을 요하는 제조 산업과 달리 문화적인 성격이 짙은 산업이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만든 '메이드 인 코리아' 화장품이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에게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만 생산하는 랑콤을 중국에서 만들어 판다면 어떻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중공 민항기 불시착 사건을 계기로 양국 간 관계가 우호적으로 급변했었다"며 "한중 수교 전후로는 중국인 사이에서 한국이 우리보다 더 잘 살고 한국산 제품의 품질이 월등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졌다"고 전했다.
1990년대 초반 중국시장에서 정신없이 달려 온 아모레퍼시픽은 몇 년 전부터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출발이 순탄했다거나 지금처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지는 않았다. 정 공장장은 "중국에서는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반일 감정이 점점 악화하면서 어느 순간 일본 여행을 가지 않고 제품도 사지 않는 문화가 생겼는데, 한국 화장품 기업이 예상치 않은 순풍을 맞았고 여기에 한류 바람이 거세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최초로 중국 법인 매출 1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3% 안팎에 불과하다. 그는 "중국에서는 점유율 5% 정도면 전체 5위권에 들 정도로 화장품 회사가 워낙 많고 시장은 크다"며 "앞으로 점유율 5% 달성은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뿐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 화장품 기업이 다 함께 성장하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관계도 비즈니스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화장품협회 산하 중국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분기별로 중국의 관련 법규나 제도 등 정보를 공유하는 회원사 모임을 갖고 있다.
정 공장장은 명심보감 구절 '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ㆍ말은 먼 길을 달려 봐야 힘을 알 수 있고 사람은 긴 세월을 지내 봐야 마음을 알 수 있다)'을 인용하면서 "중국인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면 계약서도 필요 없이 말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지만 반대로 친구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계약서조차도 믿지 않는다"며 사람 대 사람, 나아가 국가 대 국가의 신뢰 관계 구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요즘 고민 중 하나가 다소 까다로운 통관 절차인데,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는 어렵고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생소했던 1980년대 중반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정 공장장은 연구소 과장 시절 사내 공개 모집을 거쳐 중국 땅을 밟았다. 그는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중국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결국 비즈니스는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데 한국식 시스템을 적용하기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 그들의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상하이(중국)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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