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 배출을 위한 출정식의 성격을 띤 민주당 전당대회가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25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사실상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측은 앞으로 나흘간 열리는 전당대회를 계기로 '반(反) 트럼프' 세력을 한데 묶고 오는 11월 대선을 향한 유리한 고지 선점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출발은 다소 어수선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의 사퇴를 불러온 이메일 스캔들에 자극 받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들이 대회 진행은 물론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대회 운영을 맡은 당 지도부와 찬조 연사들이 잇따라 나서 힐러리 지지를 호소했지만 대회장의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일부 대의원들이 "힐러리"를 연호했지만 샌더스 의원 지지자들은 이에 맞서 야유를 퍼붓거나 "버니"를 크게 외쳤다. 이들 중 상당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를 요구하는 손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날의 주요 연사들은 당의 단합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샌더스 의원이 이날 대회장 안팎에서 지지자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데 주력했다.
그는 이날 오전에도 자신을 지지하는 대의원들 앞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트럼프는) 위험한 인물"이라면서 "나는 트럼프의 패배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힐러리와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팀 케인을 당선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오히려 '우~'하며 야유를 보내 연설을 잠시 중단시키기도 했다.
샌더스 의원은 이날 밤 전당대회 연설에서도 "트럼프의 당선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클린턴 전 장관을 중심으로 단합할 것을 거듭 호소했다.
하지만 긴장 속에 진행되던 민주당 전당대회장을 하나로 묶은 장본인은 샌더스 의원에 앞서 찬조 연설에 나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였다.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원피스 정장을 입고 미셸 여사가 등장하자 대의원들은 일제히 보라색 바탕에 ‘미셸 (MICHELLE)’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열렬히 환영했다. 이 순간은 샌더스 의원의 지지자들도 예외가 없었다.
미셸 여사는 “오랜기간동안 힐러리를 지켜본 나는 그녀가 미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할 적임자임을 확실히 믿는다”면서 “그녀는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임무를 피하지 않고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다”고 치켜세웠다.
이어서 “나는 매일 아침 사랑스런 두 딸의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면서 “나는 이제 우리도 여성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미셸 여사는 또 “오는 11월 대선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진보냐 보수냐 등을 가르는 선거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바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사회와 미래를 물려줄 지를 결정할 파워(힘)를 누가 가지게 될 지를 정하는 선거”라고 트럼프를 겨냥했다.
그는 또 “전혀 준비되지 않고 사람이 핵 단추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치 힘들다”면서 “오는 11월 선거에 우리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가 없다. 적극적으로 나서 투표하고 주변을 독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셸 여사는 이어 “앞으로 이 중요한 선거기간 동안 나는 항상 그녀와 함께 할 것”이란 말을 남기고 큰 환호와 기립 박수를 받으며 연단을 떠났다.
미셸 여사와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에 이어 샌더스 의원이 연단에 올랐다. 샌더스 의원을 지지하는 환호가 계속되자 그는 연설을 바로 시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샌더스 의원은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는 대의원들을 향해 "경선결과에 아쉬움이 있지만 미국을 바꾸기 위한 정치 혁명이 시작됐고 클린턴이 무조건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민주당은 전당대회 개막과 함께 올해 11월 대선을 위한 정강 정책을 확정, 발표했다. 이번에 채택된 정강은 샌더스 의원 지지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역대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저 임금을 시간당 15달러으로 올리는 한편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와 사회보장보험 확대적용, 은퇴자 보호대책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안전망이 대거 채택됐다.
소수의 금융자본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금융 제도 개혁과 감시 강화도 천명됐다. 무역협정과 관련해선 지난 30여 년간 체결한 무역협정이 대기업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반면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기준, 환경, 공공보건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규정한 뒤 "이제는 이런 과도한 자유화를 중단하고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지지하는 그런 무역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강은 북한을 '가학적 독재자'가 통치하는 '가장 억압적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또 미 본토를 겨냥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 대한 중대한 인권남용에도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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