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더니 이번에는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열풍에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이제 기술의 발전은 그 수준과 속도에 대한 놀라움을 넘어 이미 사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는 양상이다. 더구나 이러한 가시적인 사회현상의 이면에는 이미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가 우리를 휘감고 있는 상황들이 자리한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성과 고용이 함께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뱀의 벌린 입 모양(Jaws of the Snake)처럼 분리되어 고용절벽이란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가 저물고 소비자 개개인의 니즈와 취향을 타깃으로 하는 맞춤형 정밀생산 및 서비스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의료시장은 개인의 생체정보에 기반한 정밀의학시대로 진입하기에 이르렀다.
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 인류가 경험한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그 양상이 전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 지식과 기술들이 다양하고 변혁적으로 결합되면서 일어날 파괴적 혁신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전 세계의 경제, 사회, 문화적 대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 창출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의 속도, 변화의 전개 방식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혁명적 변화에 대응해 선진국들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대응전략을 마련하여 추진 중이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제조업 혁신에 집중하고 있으며, 일본은 로봇 신전략을 통해 로봇 기반 산업 생태계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아직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해석 수준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과거와 같이 주요 유망기술 분야인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에 대한 투자 확대 수준에서 전략이 논의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유망 신기술 투자확대 수준의 전략개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변화의 양태와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대응 전략은 기존의 틀과 접근방법을 파괴하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적 대변화와 함께 산업 및 사회시스템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첫째, 이를 고려한 통합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일례로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현재 자율주행기술 확보만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구글처럼 관련 산업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고려한 전략적 포석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둘째, 선진국들의 차별화된 전략에 대응해 우리나라도 강점 분야 중심의 차별화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기술과 산업 그리고 인프라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IT분야의 미래 잠재력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실시하고 미래 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기술적, 시스템적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 나름의 대응 전략 마련이 중요하다. 셋째, 변화에 대응할 기초체력 강화를 위해 기반기술(Infra Technology) 역량을 키워야 한다. 유망 기술 분야 발전에 토대가 되는 기술은 물론 특정 산업의 핵심 기반이 되는 기술을 확보해야 이를 토대로 다양한 기술혁신을 시도할 수 있다. 기반기술은 최첨단 연구 장비와 연계되어 있으며 역량 축적에 끊임없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므로 장인정신이 특별히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3차 산업 혁명시대에 적용해온 틀과 접근방법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다. 기존의 기술개발 전략만으로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기는커녕 쫓아가기도 어렵다. 혁신에 대한 사고의 외연 확대뿐만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파괴적 혁신이 요구된다.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