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체부가 세계적 시인 네루다의 제자 된 까닭

시계아이콘01분 54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그때그사람 -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탄생 112주년과 영화 '일 포스티노'의 추억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내게로 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네루다의 고백은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를 그 어떤 문장보다 간명하게 전달한다. 그렇게 언제인지 모르게 불현듯 시가 찾아온 이가 또 있었다. 그는 우편배달부 마리오 로뽈로. 1994년 영화 '일 포스티노'는 저명한 시인과 그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게 업무인 남자의 우정을 다룬다.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치는 네루다는 낯설지 않다. 이 영화 속 네루다와 실제 네루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시를 통해 민중과 소통했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다.

12일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태어난 지 112년이 되는 날이다. 1904년 7월 12일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라. 10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시인의 길을 반대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으로 활동했고, 이 필명은 1946년 아예 법적인 이름이 됐다.


우체부가 세계적 시인 네루다의 제자 된 까닭 영화 '일 포스티노'
AD

네루다는 시인이면서 외교관이었고, 정치인이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 속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외딴 섬에 살게 된 것도 정치적인 탄압 때문이었다. 네루다는 1945년 칠레공산당에 입당했고 1946년 상원의원으로 의회 연설에 나서 당시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네루다는 이 연설을 '나는 고발한다'라는 책으로 펴냈고 국가원수 모독죄로 지명수배 됐다.

'일 포스티노'의 원작 소설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당시 네루다의 정치적 행보를 보다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원작 소설은 칠레의 해안 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은 실제 네루다의 집이 있는 곳이다. 정치적 탄압을 피해 이슬라 네그라에 머물고 있는 네루다는 젊은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메타포(은유)를 가르치고 시를 쓰게 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도움으로 연모하던 베아트리스에게 고백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그는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돼 이슬라 네그라를 떠난 뒤에도 계속 연락하며 우정을 나눈다. 이후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죽음을 앞둔 네루다를 찾아가 그의 곁을 지키고 군부독재가 시작되자 실종된다.


우체부가 세계적 시인 네루다의 제자 된 까닭 파블로 네루다

실제 네루다도 1969년 칠레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이듬해 살바도르 아옌데를 추대하고 후보에서 물러난다.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돼 파리에 머문다. 아옌데 정부는 최초의 선거에 의한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토지 국유화, 구리 광산 국유화, 대기업 국유화, 빈민아동 우유 무료급식 등의 정책을 펴나가며 지지를 얻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사회주의 정권을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결국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는 숨지고 열흘 뒤 슬픔에 빠져 건강이 악화된 네루다도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 한림원은 1971년 네루다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그의 시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설득력을 갖췄다"고 했다. 네루다가 노래한 희망은 어떻게 됐을까. 우체부 마리오의 실종은 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피노체트의 집권 이후 공식 기록만 3197명이 숙청됐고 실제로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는 1000여명 이상이고 10만 명이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100만 명이 국외로 추방됐다고 한다.


그의 시가 흩뿌린 희망이 움트는 데는 17년이 걸렸다. 17년 동안 권좌에 앉아 학살을 일삼던 피노체트는 집권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1988년 국민투표에서 패한 뒤 시민들의 대통령선거 요구에 굴복하고, 1990년 선거에서 지면서 물러나게 된다. 이 역사는 네루다가 자서전에 쓴 것처럼 그의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는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중략)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