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AIIB 사퇴 확정…4조3000억원 들인 부총재직 잃어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인사가 끝내 국제적 망신까지 얻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임자가 아니었던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를 무리해서 밀어부친 것이 결국 우리나라가 AIIB 부총재직을 빼앗기는 사태까지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수첩인사 참사는 이 전에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연이은 낙마 및 사퇴 등을 통해 켜켜이 쌓여오다 결국 대형사고로 발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AIIB는 지난 8일 오후 홈페이지를 통해 재무담당 부총재(CFO)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휴직계를 낸 홍 부총재가 맡았던 투자위험책임자(CRO) 자리는 국장급으로 격하됐으며, 후임자 공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홍 부총재의 사퇴가 확정됐다. 새 부총재는 CFO로 내정된 프랑스 출신 티에리 드 롱게마르가 맡을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AIIB 부총재직을 빼앗기게 된 것은 AIIB가 출범한 지 고작 4개월 만이다.
박 대통령과 대학 동문인 홍 부총재는 2007년 이른바 '5인 공부모임' 일원으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인수위원,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 통합 산업은행 초대 회장 등 요직에 올랐다. 인수위 시절부터 스스로를 '낙하산 인사'로 칭해 설화에 오르기도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홍 부총재는 대우조선해양 '퍼주기 지원'의 당사자"라며 "박근혜정부가 국내 낙하산은 물론 이제 해외에서까지 낙하산 인사로 망신살을 당했다"고 말했다.
특히 홍 부총재 사태는 국가이익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4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내기로 하고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어렵게 따낸 부총재 자리를 내놓게 됨으로써 AIIB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자본금이 1000억달러에 달하는 AIIB는 앞으로 각종 도로·항만 등 인프라 개발사업을 벌일 예정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참여기회도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이번 사태는 자신의 책임회피를 위해 서별관회의를 폭로한 개인의 모럴 헤저드 뿐 아니라 무능력과 무소신의 인사를 임명한 임명권자의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대통령에게만 충실한 인사의 임명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온 국민이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 들어 잘못된 인사로 나라 망신은 물론 국가이익에 손해를 끼친 인물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윤 전 대변인은 2013년 5월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동행해 워싱턴DC에서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뒤 경질됐다.
해외순방길에 오른 대통령을 보좌하는 핵심 참모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최근 활동을 재개하면서 당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는 등 또 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수첩인사는 총리, 장관 등 주요 인사 때마다 말썽을 빚었다. 총리의 경우 2명이 사퇴하고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수난사를 겪기도 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전관예우,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도덕성 논란 속에 불과 5일 만에 낙마했다.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참사의 대응 미숙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지명된 안대희 후보자는 법조계 전관예우에 발목이 잡혔다. 다시 언론인 출신 문창극 후보자가 발탁됐지만 역사인식 논란 등에 휩싸이며 총리에 오르지 못했다. 여당 중진의원이었던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의 유탄을 맞아 추임 63일만에 자진 사퇴를 선택해야 했다.
2013년 4월에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에서 자질 논란 끝에 겨우 청문회를 통과했지만 잇따른 말실수로 이듬해 2월 옷을 벗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초연금법 공약 이행을 두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끝에 사퇴했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청문회 벽을 넘지 못했다. 이밖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내정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등도 취임을 전후로 낙마해 박근혜정부의 '인사참사' 계보를 이어갔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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