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빌려 짐싣고 소품 작업 도와…톡톡 튀는 아이들의 등굣길 스케치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기억에 남을 것 같아서 부러워요"
지난 8일 전국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창의력 높은 졸업사진을 자랑하는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찍던 날. 변장 도구를 양손 가득 들고 가는 의정부고 3학년들에게 근처 학교 여학생은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오전8시가 되자 양손 가득 짐을 든 3학년 학생들이 학교 정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교복이 아닌 청바지 등 평상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많아 놀랐지만 정작 학생들은 "오늘은 졸업사진 찍어서 평상복 입어도 돼요"라며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한 손에 '피카츄 인형'을 들고 가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반대편 손에 든 가방 속에는 포켓몬스터 포켓볼이 들어 있었다.
"포켓몬스터 주인공 지우 할 거예요. 어릴 때 보던 만화거든요"라고 밝힌 3학년 성민식군은 이날 페이스북 페이지 '의정부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졸업사진 중 두 번째를 장식했다. 포켓볼은 스티로폼 위에 색칠을 입히는 식으로 직접 만들었다. 성군은 "졸업사진 준비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학업 스트레스도 해소됐어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한 방송사가 성군을 촬영하기도 했다.
노란색 긴머리 가발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다. 3학년 김영철군은 트와이스 멤버 사나를 따라할 거라고 했다. '샤샤샤'로 유명한 사나는 김군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아이섀도까지 바르고 등교한 모습에 본인이 직접 화장했냐고 묻자 "아뇨. 화장은 누나가 해줬어요"라며 "한 번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누나랑 같이 인터넷으로 옷도 검색했어요"라고 말했다.
졸업사진을 찍은 학생들 중 김군처럼 가족들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3학년 장현우군의 경우 아버지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장군은 “아버지가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시크릿쥬쥬’ 인형이 인기 많을 걸 보시곤 저에게 아이디어를 주셨어요”라고 얘기했다.
장군 아버지는 아는 사람이 있는 공장까지 찾아가 소품 재료를 받아온 것은 물론 소품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장군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이미 소품을 만들고 계셨어요”라며 “거의 아버지 작품이죠”라고 덧붙였다. 이날 높이가 2m 가까이 되는 소품을 학교까지 가져오기 위해 장군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승합차를 빌리기도 했다.
등교시간인 오전9시에서 30분 정도 지나자 의정부고 페이지에는 졸업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전10시쯤엔 피키캐스트 메인을 차지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나르기 시작했고, 각종 언론사들은 이를 다룬 기사를 작성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인기는 실시간 검색어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검색포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게다가 의정부고 페이스북 페이지는 6일 기준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4700여명이었지만 올해 졸업사진을 올린 뒤 페이지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 9일 오전7시 기준 6만여명이 좋아요를 누른 상태다.
이날 졸업사진을 찍은 학생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오후1시쯤 하교가 시작됐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은 뒤 옷을 갈아입고 하교했지만 몇몇 학생들은 사진 속 그대로 학교 밖으로 나왔다.
영화 컨저링2의 수녀귀신으로 변장한 3학년 황성윤군은 그모습 그대로 마을버스를 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황군에게 다가와 "사진 같이 찍어도 돼요?"라고 물었다. 황군은 "네"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여러 사람들과 셀카를 찍었다. 인근 의정부여고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창밖에 있던 여고생들은 '꺅' 비명소리와 함께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황군은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더 저렴한 수녀복이 있었는데도 상대적으로 더 비싼 걸 샀다"고 밝혔다.
중학생들의 찬사를 받은 학생도 있었다. 일본 만화 '도쿄 구울'의 주인공 카네키로 변장한 3학년 이찬형군은 실제 캐릭터와 흡사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인근 중학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사진을 찍던 학생들은 자신들을 의정부중학교 1학년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군에게 다가와 "형 뭐로 변장한 거예요?","형 진짜 멋있어요","형 짱이다"라며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나중에 저희도 이렇게 해보고 싶어요"라며 이군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냈다.
의정부고 2학년 학생들은 졸업사진을 찍기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날은 선배들의 졸업사진을 부럽게 쳐다봐야만 했다. 2학년 최재완군은 "내년에 당연히 하고 싶죠"라며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가 졸업사진 찍을 때 이슈가 될 만한 걸로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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