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고 재미있지만…정치 상업적 풍자 금하기도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의정부고는 매년 기발한 코스프레 졸업사진으로 화제를 모으는데요. 8일 올해 졸업사진을 찍은 3학년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취합해 1인칭 시점으로 구성했습니다. 진솔한 후기를 들려준 학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8일은 내가 다니는 의정부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을 찍은 날이다. 우리 학교는 최근 몇 년 사이 졸업사진을 찍었다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좋아요 세례를 받고 있다. 졸업한 선배들이 톡톡 튀는 모습으로 졸업사진을 찍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2011년에 졸업한 한 선배가 재미를 위해 변장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그 후론 학교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동전, 콜라병 등으로 변장한 선배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 학교 학생들을 보고 '창의력 대장들'이라고 부른다.
요 며칠 사이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졸업사진 찍을 때 무엇으로 변장할까'였다. 누가 봐도 알 만한 것이면서 예상하기 어려운 것을 찾아야 했다. 몇몇이 게임 '오버워치' 속 캐릭터를 선택지로 내놨지만 요즘에 워낙 인기가 많아 예상이 가능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또한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오버워치를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선택의 폭이 지난해보다 좁아졌다. 학교에서 상업적·정치적·선정적인 것은 따라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지난해 한 이온음료 광고를 따라한 선배가 온라인에서 유명해지자 선생님들은 학생들 사진이 상업적으로 악용될까 걱정하셨다. 기업이 홍보를 위해 학생들에게 자기네 제품으로 변장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어서다.
정치인을 따라했다 신고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패러디한 선배에 대해 우익 성향의 일간베스트저장소 네티즌이 국정원, 교육부 등에 민원을 넣었다. 대통령이 가뭄 현장에서 물 뿌리는 장면을 따라한 걸 그 네티즌은 대통령 비하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올해는 학교도 학생들도 조금은 조심스럽다.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올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졸업사진 촬영 계획서'를 미리 제출하도록 했다. 기준이 엄격했던 건 아니지만 학생들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아이디어 하나를 내면 친구들끼리 "그건 좀 논란이 될 수 있을 듯"이라며 서로 얘기해줬다. 2014년 당시 교감선생님이 학생들 노출이 너무 심하다며 졸업사진 찍는 걸 중단하시려고 했다는데 친구들 중에서는 '계획서를 내더라도 창의력 높은 졸업사진을 계속 찍는 게 더 좋다'는 의견이 많다.
변장할 대상을 정하고는 친구랑 겹치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똑같은 걸 하면 비교될 수 있어서다. 그리고 남들 기억에 남기도 어렵다. 페이스북 페이지 '의정부고등학교 대신전해드립니다'에는 "누구 A로 변장하는 사람 있나요?"라고 묻는 글이 여러 개 올라오기도 했다. 어제는 한 아이템을 두고 가위바위보 하는 애들도 봤다. 듣기론 아이돌 AOA 멤버 설현을 따라한다고 한 애들이 어제까지 6명이었는데 괜찮을까 싶다.
올해 졸업사진 준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 5일에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났고, 6일에는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렀다. 6일 저녁 부랴부랴 준비물을 사러 돌아다녀야 했고, 7일엔 소품들을 만들었다. 일정이 빡빡해서 준비를 제대로 못한 친구도 있다. 그 친구는 선생님들이 일부러 일정을 그렇게 짠 게 아닐까 의심하며 투덜거렸다. 우리 졸업사진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많지만 수시와 수능을 앞둔 우리가 너무 풀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사실 우리 학교 졸업사진은 학생이 혼자 찍는 게 아니라 가족·친구들이 같이 찍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거나 소품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누나가 있는 친구는 학교 오기 전에 누나한테 화장을 받았다고 했다. 내 경우엔 미용을 공부하는 다른 학교 친구가 도와줘서 다행이었다.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날릴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 친구들과 추억을 남길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다들 졸업사진 찍는 날을 기다렸다.
설레는 한편 부담도 컸다. '우리가 선배들만큼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올해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려온 졸업사진을 다 찍고 각종 SNS에 우리 모습을 올렸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줄까 걱정은 된다. 그러나 반응이 별로여도 친구들끼리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한다. 졸업사진이 어떻게 나올지...이제는 졸업앨범 받는 날이 기다려진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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