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취한 말들이 시간을 건너가는 풍경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젊, 늙.
비슷한 구조를 가지면서도 대립적인 뉘앙스를 지니는 저 말뿌리에 삶의 본질이 있는 듯 하다. 젊음의 젊과 늙음의 늙.
둘다 겹받침을 지닌 것도 묘하고, ㄹ을 걸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흘러가고 굴러가는 ㄹ은 인생의 물길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ㅁ으로 부드럽게 입술을 붙여 음미하는 것이 '젊'이고, 거기에 ㄱ을 붙여 목구멍을 죄며 제동을 거는 것이 '늙'이다.
젊다와 늙다는 모두 15세기 문헌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말이다. 그러나 '젊다'는 지금보다 더 광범위한 말로, 소년기(어리다)까지 포함하는 연령층을 가리켰다. 즉 늙지 않은 사람은 모두 젊은 사람이었다. '늙다''는 '낡다'와 같은 계열어를 거느리고 있지만, '젊다'는 딱 그 표현 뿐이다.
아마도 생명의 절반을 잘라, 앞쪽은 젊고 뒷쪽은 늙다고 보면 대개 정확할 것이다. 젊음은 생의 절정쪽으로 나아가는 기간이고, 늙음은 죽음의 문턱으로 나아가는 기간이기도 하다. 망설이며 가는 ㄻ은 아직 젊기 때문이고, 가다가 목에 턱 걸리는 듯한 ㄺ은 이미 늙어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한 글자의 변화가 삶의 풍경을 바꾸며 전망을 바꾸며 의미를 바꾼다. 고작해야 한 글자다. 젊에는 늙으로 가는 앞반과 뒷반의 우화.
'늙'은 지팡이를 세워 젊을 돌아보지만, '젊'은 제 속에 갇혀 먼 앞에 내다볼 마음이 없다. 절로 가는 것이 젊음이고, 늘어가는 것이 늙음이다. 두 가지를 다 겪어야 삶이고, 두 가지를 다 겪은 뒤 죽음을 맞는다. 대단히 살아봤자 글자 몇 개의 그물코를 벗어나지 못한다. 젊과 늙.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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