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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삥땅' 치다 '빙당' 된 사연

시계아이콘01분 37초 소요

무슨 일이건 첫 시작은 인사부터 해야 하는 법. 다시 시작하는 초동여담의 필진에 참여하면서 자기소개를 빠뜨리는 건 예의가 아니다.


몇 해 동안 글과 그림의 경계에서 붓을 놀리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온전히 그 일에만 매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취미였던 데다 필력도 고만고만한 초심자에 불과했으니 '놀린다'는 표현은 과한 감이 없지 않다. '마흔 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서예를 배운 것이었는데, 선생님의 체본을 곧잘 흉내내는 걸 보고는 내심 '나도 그나마 좀 잘하는 게 하나는 있구나' 하고 반가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적 가치를 높여 서예(書藝)라고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달리 부른다. 전예해행초 서체의 근간을 만든 중국은 서법(書法)이라 해 법칙을 중히 여기고 일본은 서도(書道)라 칭하며 정신을 강조한다. 본질은 같되 시각이 다른 것이다.


서예에 입문한 것은 버킷 리스트 영향도 있지만 사실 스트레스 해소용이었다. 그즈음 본질은 분명 같은 인간인데 삐딱한 시각을 가진 한 인사와의 관계가 마음을 심란케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붓을 잡고 있으면 족히 두어 시간은 아무 잡념 없이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마음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모양이다.

구양순 천자문으로 해서를 떼고 을영비와 예기비의 예서에 이어 장맹룡비로 육조해서, 석고문을 임서하는 전서에 이를 때는 왜 서예가 글보다는 그림에 가깝다고들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 획 한 획 힘이 있어야 함은 물론 획과 획, 글자와 글자 사이에 일정한 균제미가 있어야 하며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래서 서예를 하는 사람은 평정심을 갖을 수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시곤 했다.


마침 스승님은 본인 아호의 돌림자 격으로 문곡(文谷)이라는 호를 지어 주셨다. 음양오행과 수리오행을 따져가며 지었다는 그 호는 '글밥'을 먹고 살라는 뜻이었다. 글쓰고 고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으니 제법 어울리는 별칭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입에 붙는 비공식적인 호가 하나 더 있다. 서예 입문 초기 뒤늦게 발견한 재능(?)에 스스로 감탄하는 와중에 후배가 무심코 던진 말이 귀에 쏙 들어온 것이다. "형은 그럼 호를 '삥땅'이라고 해. 삥땅. 맨날 애들 삥뜯잖아." '지들 입으로 들어간 술값이 얼만데….' 속으로만 되뇔 뿐, 짝궁둥이가 될까 염려스러워 바지 뒤춤에 있던 지갑을 웃옷 주머니나 서랍에 넣어둔 것을 잊고 서둘러 점심을 먹으러 나간 게 화근이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후 '빈손'이란 걸 알았을 때의 황망함이란. "선배가 밥 사는 시대는 지났다"는 너스레를 떨며 함께한 후배 중 한 명을 지목해 추억거리를 만들어 줬던 걸 언급한 것이다.


어찌됐건 삥땅에서 된소리만 순화하면 괜찮을 듯 싶어 만든 게 '빙당(憑堂)'이었다. 의지할 빙에 집 당. 내가 의지해도 좋고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대도 좋은, 그런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럴싸한 해석과 함께.


지금은 휴대전화 케이스에 신용카드가 담기는 문명의 이기 덕에 이런 황망한 일은 정말 추억이 돼 버렸지만 아직도 가끔 예전 후배나 동료들을 만나면 인사말 대신 묻는다. "빙당 선생, 오늘은 지갑?" 그 사이 내 답은 바뀌었다. "그래, 서로에게 의지하는 집이 되자꾸나."


그간 초동여담을 연재했던 선배들을 본보기 삼아 필명을 함께 써 보기로 한다.<빙당(憑堂)>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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