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리네, 시원히 좀 알려주세요
시원함이란 온도의 개념일까. 낮은 온도가 시원함을 만들어내는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원함의 일부일 뿐이다. 봄은 따뜻하고 가을은 시원하다는 말. 혹은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찾는 일. 수영을 할 때의 시원함. 우리는 이런 기억들 때문에 시원함을 온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원함은 따뜻함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시원함은 무엇인가가 잘 통하는 상태를 말할 뿐이다. 기운이 잘 통하고 느낌이 잘 통하고 이야기가 잘 통하고 컴퓨터 네트워크가 잘 뚫리고 전화기가 잘 터지는 것. 이 모두가 시원함이다. 이런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이, 배뇨와 배변이다. 그것들을 원하는 만큼 후련하게 누는 것. 그보다 시원함을 잘 표현하는 말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긴요한 시원함은 이것일지 모른다.
차가운 상태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시원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막히거나 더디게 움직이는 내부의 기운을 자극해서 잘 돌게 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목욕탕에 앉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원하다 너도 들어오려무나'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로 아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시원하기 때문이다. 따뜻함도 몸의 기운을 잘 돌게 하면, 시원함인 것이다.
속이 시원하다는 말. 그것은 속이 차가워지는 것이 아니라, 막혔던 것, 걱정하던 것, 어지럽던 것, 답답하던 것이 확 뚫리는 기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의 많은 것들은 '시원함'이다. 보고싶은데도 못보던 사람을 보는 시원함, 아픈 데를 고쳐주는 시원함, 답답한 넥타이를 풀고 옷을 확 벗어제치는 시원함, 시집 못간 딸이 시집가는 시원함, 못보던 책을 실컷 읽은 시원함, 변비가 해결되는 시원함, 박사 학위를 끝내 따낸 날의 시원함. 크게 숨쉬는 시원함. 시원하게 산다는 것, 시원함을 잘 느낀다는 것, 시원하게 풀어낸다는 것. 그것 또한 삶의 핵심 노하우임에 틀림없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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